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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예인짱 2007. 6. 1. 21:00

[20세기古典(49)]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책.” 고전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면 아마도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1889~1975)의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1934~1961)’가 바로 그런 예일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역사학자 토인비는 1914년 보편적 문명사를 쓸 구상을 시작했다. 1934년 ‘역사의 연구’ 첫 권을 낸 토인비는 저술을 이어가 1954년 제10권을 편찬하면서 시리즈를 일단 완성했다. 이후 보론(補論) 또는 부록의 성격을 띤 ‘아틀라스’와 ‘재고찰(再考察·Reconsiderations)’을 1959·1961년 각각 출간해 총 12권의 전집을 이뤘다.

이 책은 실제로 다 읽은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책이다. 일반 대중은 역사 교사인 D.C.서머벨(Somervell)이 토인비의 도움을 받아 정리한 축약본을 많이 읽었다. 그 자체로도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닌 축약본은 우리나라에서 여러 차례 번역됐고 지금도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다. 전집 번역본은 절판된 지 오래다.

토인비의 어머니는 역사 관련 책을 편찬하는 역사가였다. 숙부이자 같은 이름을 가진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산업혁명의 개념을 정립한 대 경제학자로 이름 높았다. 학구적 분위기로 가득했던 명문가에서 태어난 토인비는 옥스퍼드의 밸리올 칼리지(Balliol College)에서 서양 고대사를 공부했다. 그는 투키디데스를 읽던 젊은 사학도 시절 고대 그리스와 현대에서 많은 유사점을 발견하면서 문명사를 개관하는 작업을 구상했다.

토인비는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가 쓴 ‘서구의 몰락(The Decline of the West)’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슈펭글러는 역사가 생물체와 같은 숙명적인 과정을 거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토인비의 사상에 무시하지 못할 영감(靈感)을 주었다. 굳건해 보이는 서구문명의 몰락을 예견한 이 책을 읽고 토인비는 큰 문명의 흥망성쇠 과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슈펭글러의 경직된 숙명론적 또는 순환론적 역사관을 거부했다. 대신 토인비의 역사관은 훨씬 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진전됐다. 그는 ‘역사의 연구’에서 문명도 생명체와 같은 주기(cycle)를 가지고 있지만 모두 똑같은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했다. 다른 환경 아래에서 다른 방향으로 진전될 수도 있고, 또한 도전(挑戰)에 대한 구성원의 응전(應戰) 방식에 따라 여러 형태를 나타낸다고 봤다. 즉 역사의 전개 방식은 그 구성원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문명을 기본단위로 분석했다. 이러한 노력은 19세기식 민족주의 시대를 마감하려는 토인비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고 분석되기도 한다.

토인비는 인류역사상 명멸했거나 현존하는, 이집트부터 극동(極東)에 이르는 20여개의 문명을 포괄적으로 고찰했다. ‘역사의 연구’를 읽는 독자는 일단 그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당한다. 여러 문명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토인비는 서구 중심주의와 기독교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보편적 관점을 통해 세계 역사와 인류 문명을 해석하려 노력했다. 그는 문명이란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발생·성장·쇠퇴·해체(소멸)의 과정을 밟으며, 역사는 인류 문명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라고 파악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밟아가는 원인을 밝혀냄으로써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