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입수 정찬권(미국 유학생)...http://blog.naver.com/texasatm...2007.02.06 1주일 전에 와이프가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미국교회의 Adam이란 할아버지 선생님의 저녁초대가 있었습니다. 한국인들만 초대하는 저녁식사 였습니다. 전에 한국에 가본적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방문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Adam의 나이 79세, 우리나라로 따지면 80 이었다는것에 잠시 놀랬습니다. 80세의 나이에도 volunteer로 교회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복구가 한참이었던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서 2년간 교회의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한국에 왔었다고 하면서, 그당시 찍었던 귀한 한국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 대구를 들어가면서 찍은 대구의 표지판 입니다... 그당시에도 사과가 유명했군요.... 백두산 가는길을 사랑하자라는 말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 제가 대구는 15년전에 한번 가본적밖에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가 어딘지는 대구 사람도 잘 모를듯 합니다..^^; 소시장의 풍경입니다.... Adam에게 인상깊었던 한국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고 합니다... ![]() Adam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중 하나인 한국 노인분들의 담배피는 사진 입니다. 이 사진은 Adam의 집 한견에 Letter지 크기로 벽에 걸려 있던 사진 입니다. ![]() 구호물품인 옷가지를 받아가시는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귀엽게 생긴 아이의 모습입니다. ![]() 시장의 한켠....카메라를 의식한듯한 어색한 모습의 두여인... ![]() 추수를 하는 들판의 모습입니다.... 전쟁때문이었는지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어보이는 군요.... ![]() 추수를 도와주고 있는 Adam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Adam은 지게에 대하여 무거운 짐을 지어도 힘들지 않게 설계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 ![]() ![]() 아래 보이는 세 사진은 피난민촌의 사진 입니다. 바투 붙어있는 판자집들의 모습과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제의 모습입니다.. ![]() 줄을서서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Adam의 기억하나는 그당시 한국인들은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진하게 분유를 주었다가 모두가 배탈이 나, 한동안 우유 배급은 거부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 공공 화덕에서 분유를 더운물에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 피난민촌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입니다. 사실 지금은 최소한 50대 중반 이상이 되었을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들입니다 ![]() 어린 여자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한푸대의 Charcoal(숯?)을 이고 가는 모습입니다. ![]() 현재의 Adam과 아내 Alice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갔을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간 곳이라 합니다. 이후 몇나라를 더 돌아다니다가 UTMB(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에서 의사 및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교회에서 외국인들은 위한 영어수업등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동안 다녔던 3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된 기억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서 몇장의 지금의 한국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었더니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이젠 여행하기 힘들거라며 웃어주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빛바랜 칼라사진들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100여장이 넘는 한국전쟁 후의 대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만, 블로그 한페이지에 올릴수 있느 양이 한정되어 일단 몇장만 올려 봅니다... 올라와 있는 모든 사진은 Adam이 사용을 흔쾌히 허락 해 주었습니다. 두번째 1954년 대구의 사진들 입니다. 싸구려 필름 스케너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130장 정도의 슬라이드 필름을 스켄하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학생인 저로서 5시간의 투자는 큰 것이죠, 물론 50년동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Adam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요.... ![]() 왼쪽이 Adam이고 오른쪽은 친구인 burkholder라고 써 있네요... 맞는 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Jeep을 타고가다가 전복사고를 당한후 대구의 한 군병원에서 치료후 기념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진과 비교했을때 눈빛이 강렬하군요... ![]() 원조물품에 대한 환영행사에 학생들이 동원(?)된것 같은 사진입니다... 전쟁후의 모습들인데도 밝은 표정들입니다...(단월)도 아마 그 어디있었으리 ![]() 이 사진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고아가 아닌사람들도 많이 보이는 군요....^^; ![]() Outdoor Meeting이라고 써있는 사진입니다... Adam 말대로 모두가 검은 머리에 흰옷을 입었습니다... ![]()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을 방문한 Adam과 아이들의 사진 입니다... 오른쪽의 양복아저씨 주윤발이랑 좀 비슷해보인다는 저만의 생각....ㅡㅡ; ![]() Adam의 목에 걸린 사진기가 이 대부분의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 입니다. 기종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Adam은 저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인상깊었다고 합니다... ![]() 좀 사는집 자제분들 같군요.... 비로도(?) 치마와 양장(?)을 한 자매들입니다.. ![]() 피난민촌의 우유를 마시는 또다른 사진이군요.... 개인적으로 사진속 분들의 지금 근황들이 궁금해 집니다... ![]() 사진의 제목이 'boy wearing only rubber shoes'입니다...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제 어렸을때도 저러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 그당시 보기 드물었을거 같은 직업여성이군요..... 교통정리 아가씨......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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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대구 모습 슬라이드 제공 아담씨 인터뷰 | |
"젊은 시절의 대구 순박한 인심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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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는 1954년 대구의 생활상을 담은 컬러사진을 입수 한 뒤 블로그(http;//blog.naver.com/texasatm)에 처음으로 사진을 올렸던 미국 유학생 정찬권씨를 통해 당시 사진을 촬영했던 아담(Adam Ewert,Ph.D.80)씨와 e메일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본사에 제공한 사진들은 아담씨가 한국전쟁 직후 복구가 한창이던 1954년부터 2년간 교회 봉사활동 차 대구에 머물면서 촬영한 것이다.
대구를 비롯해 해외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아담씨는 미국 텍사스 의대 미생물학 교수(의사)를 퇴직한 뒤 현재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원봉사로 교회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당시 어떤 목적으로 대구에 왔나
▲ 기독교 단체인 MMC(Mennonite Central Committee) 활동을 자원해 대구에 왔다. 주로 구호물품 배급 등의 활동을 했다.
-- 대구에 얼마나 머물렀나
▲ 1954년부터 2년간 대구에 거주하면서 때때로 부산도 방문했다.
-- 촬영 당시 대구 및 한국에 대한 소감은
▲ 첫 외국생활이라 모든게 신기했다. 당시 도시 지역은 좀 위험했지만 시외로 나가면 사람들이 친절하고 안전했다. 도시에서는 구호물품을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시골에서는 아무도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 사진을 촬영한 특별한 이유는
▲ 대구가 미국 밖으로 나와 봉사하는 첫 기회여서 많은 기대감으로 대구에서 보고 느낀 것을 사진으로 남기려 했다.
-- 당시에는 귀한 슬라이드필름을 사용한 이유는
▲ 처음으로 경험한 외국의 모습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보다 선명한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 한국에서 슬라이드필름을 어떻게 구했나
▲ 미군부대 PX(매점)에서 구입했다. 군인은 아니었지만 출입 허가가 있어 비교적 쉽게 구입했다.
-- 촬영 당시의 구체적 기억이 있다면
▲ 너무 오래전 일이라 대부분의 기억이 없다.
-- 촬영 당시 힘들진 않았나
▲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이 모두 호의적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많이 좋아 했다.
-- 왜 이제까지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나
▲ 한국인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사진을 보여 줬다. 그러나 한국에 사진을 공개할 한국친구가 없었을 뿐이다. 그들은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1950년대 칼라사진에 놀라워했다. 이번 기회가 인쇄매체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 다시 대구를 방문할 계획은
▲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는 아내의 건강과 내 나이가 좀 많다. 현재 내 거실에는 한국에서 촬영한 많은 사진을 붙여두고 있다. 이 사진을 통해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 미국에 와 있는 많은 한국인들을 보면 한국이 놀랍도록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내가 촬영한 사진을 보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좋아 한다니 더욱 기쁘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위 사진속 난민촌 아이들중 한사람이었던 이영식씨.
(사진 매일신문)
북한 출신으로 전쟁때 남쪽으로 피난와 당시 난민촌에 살았던 이영식씨가 본지에 실린 당시(1954 年)의 사진속 아이들중 자신의 모습을 가리키며 반가워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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