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삶/역사,추억이야기

세종대왕과 한글

예인짱 2007. 5. 13. 13:14


▲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자 발명한 세종 대왕

지난 9일은 558 돌 한글날이었습니다. 이 날 경기도 여주군 영릉과 서울 홍릉에서는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잔치가 펼쳐졌습니다. 조선 초 세종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우리의 글을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집현전을 만들었고, 마침내 1443년 훈민정음을 반포하기에 이릅니다. 세종은 과학 기술에도 크게 관심을 쏟아 측우기ㆍ해시계ㆍ물시계 등도 학자들과 만들었습니다.


▲ 왕의 자리에 오른 뒤 훈민정음 창제에 온 힘 쏟아

세종은 조선의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태종의 뒤를 이을 임금은 첫째 아들 양녕이었지만, 그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 자유롭게 살고자 했습니다. 결국 양녕은 태종에게 미움을 사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 나고 셋째인 충녕이 조선의 4대 임금 자리에 오릅니다. 이 분이 바로 세종 대왕입니다.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한문과 다른 아주 쉬운 우리의 글을 만들라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령합니다. 중국의 말은 너무 어려워 백성들이 일상에서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학자들과 함께 열심히 글 만들기에 노력했습니다. 세종은 특히 집현전 학자들이 밤을 세워 훈민정음 창제에 노력하는 것을 흐뭇하게 여겼습니다. 간혹 새벽에 집현전에 몰래 들러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학자가 있으면 어의를 벗어 덮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 년 만에 비로소 우리 말인 훈민정음이 완성됐습니다.

‘나랏 말씀이 중국 말과 달라 글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니 우매한 백성이 말하고자 함이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 편하게 함이라.”

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으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불렀습니다.

“전하! 이제 우리 글이 있어서 중국의 문자 식민지에서 벗어났사옵니다.”


▲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신하들은 단호하게 꾸짖어 하지만 신하 가운데에서는 훈민정음 탄생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반대하는 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전하, 지금까지 써 온 한자가 바로 우리의 글인데 새로운 글을 백성들에게 퍼뜨리면 혼란스러워 더더욱 의사 소통이 어려워질 것이옵니다. 아뢰기 황송하지만 새로운 글을 더 이상 만들지 마시옵소서!”

“그러하옵니다. 갑자기 훈민정음을 쓰고 한자를 사용하지 아니하면 명나라가 가만 있지 않을 듯하옵니다.”

세종은 많은 신하들의 반대 얘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고 아껴야 할 그들이 오히려 한글을 우습게 알고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금과 조정은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오. 한자는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이 사용하기에 불편하오. 그러니 누구나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니 더 이상 반대하는 자가 없기를 바라오.”

하지만 한글 사용을 반대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져 갔습니다.

그 중 가장 심하게 반대한 사람이 최만리였습니다.

“전하, 한문은 옛 성현들의 문자입니다. 공자나 맹자 같은 중국 성현들의 가르침은 모두 한자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훈민정음을 백성이 사용케 되면 한자를 몰라 성현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해 윤리와 법도가 사라질 것이옵니다. 그러니 상스러운 훈민정음의 사용을 당장 금하시옵소서!”

최만리의 주장처럼 당시 신하와 일부 백성들은 훈민정음을 상스러운 글자라고 하여 ‘언문’이라 불렀습니다. 또 여인들이 주로 사용한다고 해서 ‘암글’, 스님이 사용한다고 해서 ‘중글’이라는 천한 말을 했습니다.

이에 세종은 최만리를 비롯한 중신들을 다시 한번 크게 꾸짖었습니다.

“경들은 지금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지나친 행동을 했도다. 모두 옥에 가두고 반성할 때까지 내보내지 않겠다!”


▲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우수한 글자로 인정

세종 대왕은 이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한邦?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한글은 당시에는 제대로 인정 받지 못했습니다. 배우지 못한 백성들이 어깨너머로 배워 사용하다 조선 왕조가 끝날 즈음인 19세기에 들어서야 한글과 한문을 함께 사용하게 됩니다. 이 때 ‘한글’을 국문이라고 해서 공문에 함께 사용하였으며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글은 ‘가장 배우기 쉬운 소리 글자’로 세계의 언어 학자들로부터 칭찬을 듣습니다. 한글을 세계 공통어로 사용하자는 운동도 펼쳐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뛰어난 독창적인 한글이 탄생하게 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종 연보>
1397년 정안군(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남
1418년 조선 제4대 임금이 됨
1419년 쓰시마 정벌함
1420년 집현전 설치하고 한글 창제를 도움
1433년 4군과 6진을 설치
1442년 측우기를 발명함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함
1445년 '용비어천가' 편찬함
1446년 훈민정음을 한문으로 설명한 '훈민정음'을 편찬함
1450년 재위 32 년 만에 승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