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심리교실

열등감

예인짱 2007. 5. 20. 19:20
"어때 내께 더 멀리 나갔지! 짜아샤"

당연하지만, 열등감은 너무나 원초적인 곳에서 시작된다. 흔히 남자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놀이 중에 ´오줌 멀리 날리기´라는 것이 있다. 무지개 모양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오줌발(?)의 길이에 따라 남자의 서열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다른 기교나 잔재주 없이, 실은 순수하게 방광의 압력과 저장된 소변의 양에 의해서 그 순위가 결정되는 순진한 내기이지만, 고추의 길이나 크기에 따라 한 수 밀렸다는 착각에 애꿎은 부모만 원망을 한다.

아이들 놀음이라고 코웃음치지만,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소변과 성기에 대한 남성의 집착은 ´원초적인 열등감´을 씻지 못한다. 소변기에 떨어지는 ´쏴´소리에 놀라고, ´졸졸´거리는 내가 작게만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는 것 같다.

정신의학의 선도자인 프로이드에 의하면, 아버지의 성기와 자신의 고추를 비교함으로써 열등감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한 두 남자의 경쟁 때문이라고 프로이드는 해석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프로이드는 여성은 성기 자체가 없기에, 아니 묻혀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태생적인 열등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 ´남근 갈망(penis envy)´이 여성 심리의 핵심이라는 주장인데, 최근에는 반대이론들도 만만치 않다.

열등감 또는 콤플렉스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악화시킨다.

고졸 출신으로 일반 사원에서 이사까지 승진한 입지적인 인물인 A씨는 학력에 대한 열등감쯤이야 완전히 극복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평소 아끼던 일류대 출신의 부하직원의 아들이 S대를 수석인지 차석인지 높은 성적으로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 직원에 대한 노골적인 악감정 때문에 괴로웠다. 재수를 하는 아들 때문에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미운 마음을 자제하기는 힘들었다. 급기야 불면과 불안의 고통으로 상담을 했다.

교장 출신으로 전형적인 선비 스타일인 A씨의 아버지는 아직도 아들을 조롱했다. 사회적 성공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아버지는, 형제 앞에서 A씨를 ´대학도 못나온 놈´이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런 아버지에게 변변하게 화 한번 못내 본 A씨는 분명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었다.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는 ´난 아버지 보다 덜 배웠어´라는 열등감이 있었다. 이 열등감을 딛고, 어쩌면 열등감이 성공에 집착하는 추진력이 되어, 고졸의 학력으로 대기업 임원이 되었지만, 열등감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던 A씨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열등감의 극복은 사고의 전환에서 시작한다. 우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열등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거꾸로 인정해야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다. 돌아서 갈 수 있는 지혜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도 생긴다.
두 번째는 열등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내가 잘 못하는 것, 내가 자신 없어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남들이 보고 비웃을망정, 숨기고 덮어두려다 저지를 수 있는 더 큰 실수를 막을 수 있다. 보여주기까지 어렵지, 사실 보여주고 나면 그다지 비웃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랄 것이다.

세 번째는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열등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의 특징은 남들과 비교하거나 또는 남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나´이다. 다른 관객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다른 무대의 주인공과도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열심히 웃겨야한다. 멜로 드라마를 즐겨보거나 ´찔찔이´나 액션활극을 선망하는 ´조폭´의 비평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

열등감은 극복할 수 있고, 극복되어야 한다. 너무 극복하기 힘든 열등감이라면, 미워하지 말고 차라리 인정하고, 보여주고, 그리고 사랑해보자. 어느새 열등감은 그 시절 오줌발의 기억처럼 아련히 사라질 것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