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양육의세계

신앙의 적-인간의 심리

예인짱 2007. 2. 9. 01:27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내가 ~하는 존재훈련을 받는다.

내가 ~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값이요, 인간존재의 본질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런 정서속에서 점점 더 성장하게 된다.

 

이런 사람의 가슴속에 심겨진 신앙의 본질도 철저히 내가 ~ 하는 것에 기준이 맞추어진다.

내가 ~하는 것이 신앙이요,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는 정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신앙적 삶, 자신의 신앙적 가치를 내가 ~하는 것에 기준한다.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내가 ~하는 것을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께 대한, 하나님이 나에 대한 절대평가의 기준으로, 신앙의 본질로 삼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있어 복음은 하나의 구조적인 흐름을 완성하는 것이 되고 만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

이 모든 언어들은 다 자기 존재의 형태적 전환에 근거한다.

 

내 존재의 형태가 변한 것이 변화의 내용으로 이해하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의 변화가 내가 ~하는 존재로 얼마나 변화되었는가에 근거하여 자신의 변화를 논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에 신앙이 담기면 신앙은 내 존재의 한 흐름을 만들어 준 경험이 되고 만다.

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내용, 내가 ~하는 것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가 자신의 잇슈인 동시에 신앙의 잇슈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사람의 심리는,

그 일 자기 존재가 되고,

그 일 하나님 자체 되고,(심리적으로)

그 일 의해 모든 신앙의 성패가 결정되는 요인이 되고 만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사람이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율법을 지키는 행위였다.

그들은 율법이 곧 하나님을 대신했고, 율법에 근거하여 자신의 존재와 하나님을 믿음의 본질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들은 자기 의를 성취함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만족을 만들었고, 자기의를 과시하기 위해 많은 외식을 일삼는 비 양심적이고 비 영성적인 일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던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내면과 외형이 다른 극단적인 양면성이 있는 차가운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성경은 이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을 파헤쳐라. 너희의 겉은 잘 정돈된 회칠을 하고 있지만, 너희의 속은 냄새나는 더러움이 가득한 존재들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을 신앙으로 정의하는 것은 영원한 신앙의 적이다.

 

신앙의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자기가 ~하던 것을 완전히 멈추는 작업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기의,

자기 가치,

자기 추구를 완전히 중지하게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가 잘못 살았기 때문에 자기를 멈추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를 멈추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는다.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가 ~하는 것을 멈추게 하셨다.

아브라함이 나이 75세에 부르심도, 100세에 아들을 주심도, 모세를 40에 광야에 보내심도, 80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려주심도, 모두가 내가 ~하는 것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심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사람을 책망하신 말씀이 몇군데 나오는데,

그중에 가장 하나가 바로 내가 ~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은 사람에 대한 판단이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자기 행위에 근거한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행하심의 본질을 알길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사도바울은 자기야 말로 율법의 의로 하나님앞에 서기 위해 몸부림을 친 사람이요,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 율법의 근거에 의해 예수가 왜 필요한지를 전혀 알지 못했고 걸구치는 예수를 잡아 죽이는 일이 옳다는 평소 소신을 갖고 기독교를 핍박하였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만났고,

그 예수의 비밀을 깨달으면서 그는 고백했다.

율법의 의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어 돌아가신 것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하는 것에 근거하여 신앙을 하면,

신앙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신앙의 주제들은 다 내가 ~하는 것이 귀속되어 나중에 남는 것은 내가 ~하는 것만이 남는다.

그 일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그 일이 나를 대신하고 그 일이 신앙의 본질이 되고 만다.

 

이것은 신앙을 막는 들보다.

이 사람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려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만다.

 

신앙은 이런 세계가 아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는 말씀은,

다 신앙의 본질을 바로 발견한 그 발견 안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이 신앙의 본질을 발견하는데 집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