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4일 늦은 오후, 강남역 근처에서 통기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음악소리에 취해 따라가 보니 한 남자가 통기타를 들고 열창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딘지 낯이 익다.
통통해진 그의 몸이 세월의 변화를 말해주지 않았다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80년대 후반 지금의 40-50대 아줌마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가요계의 귀공자 조하문이었다.
‘이 밤을 다시 한 번’, ‘해야’ 등 그가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자, 그 앞을 지나던 이들이 깜짝 놀라 뒤돌아본다. 한때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야했는데, 그가 길 한복판에서 거리콘서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젊은 청년들은 그를 안다기보다 그가 부르는 노랫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그런데 그가 부르는 노래가 어딘지 다르다. 콘서트 중간 중간 그가 내뱉는 말이 심상치 않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제가 행복해 질 수 밖에 없었던 그분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갑자기 행복예찬론을 펼치는 가수 조하문. 그는 자신을 어둠과 교만 가운데에서 살려내신 하나님을 소개했다. 부족한 것 없이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으나 늘 곤고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 자신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곤 가스펠을 부른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돼서 돌아왔다. 아니 단순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목회자가 돼서 돌아왔다.
가수 조하문이 아닌, 목사 조하문. 그는 2002년 목사 안수를 받고 돌연 가수에서 목회자로 변신해 현재 토론토 비전교회를 섬기며,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기타를 치고, 중학교 때 이미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콘서트를 열며 노래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그가 갑자기 목사가 됐다니 어딘지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 같다. 30년 가까이 오직 노랫꾼으로 살던 그가 목회자가 됐다면 어떤 모습일까. 자신이 받은 노래은사로 특수사역을 하는 것일까.
“제 주 종목은 설교와 성경공부, 장년예배입니다. 현재 시무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절대 노래하지 않습니다. 처음 청빙을 받아 갔을 때 교인들과 약속했지요. 앞으로 3년 동안은 절대 노래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한국에서의 거리 공연도 사실 계획된 행사는 아니었다. 그는 4년여 만에 모친의 팔순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가족 모임 외에 공식적인 행사는 딱 두 가지. 한국을 떠나기 전 자신이 섬기던 새빛맹인교회에서 시각장애인 양로원 시설인 ‘새빛요한의 집’ 개원해 이를 축하하는 콘서트를 서초구민회관에서 하기로 한 것. 또한 그의 어린 시절부터 목사가 되기까지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록한 자전적 신앙에세이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홍성사 간) 출간을 하는 것이었다.
“제가 떠나 있는 4년 동안 한국이 참 많은 발전을 했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민들의 얼굴에 마치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과거의 제 모습처럼 어둠과 슬픔만이 가득하더군요.”
불과 10여년전만해도 그가 거리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을 전하고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갑작스레 거리 공연을 준비한 것이다.
‘해야’, ‘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 등 자신의 히트곡과 가스펠을 부르며 1시간동안 계속된 콘서트는 세대, 종교를 초월해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누군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감 가득하던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군가는 그의 신앙고백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저는 웃음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비로소 웃을 수 있었지요. 부족한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땐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대했고, 많은 사람을 내 발 아래 두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후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부족할 것 없었지만 오히려 자신이 엄청난 장애인이었음을 고백하는 조하문목사.
“실제로 저는 토론토에서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대부분이 처음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키가 100cm정도에서 멈춘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항상 행복해 합니다. 누가 진정한 장애인일까요?”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과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직접 찾아가 잘못을 빌었다는 조하문 목사. 그는 이제 하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간단해질수록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길입니다. 직분 자체도 하나님께 얻어지는 것이지요.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 내에는 18개의 부서가 있습니다. 그중 저는 목회부의 부서장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장애인 사역을 하게 된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그곳에 장애인 사역단체가 있었다는 것.
“제 비전은 비전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비전을 꿈꾸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살지 못하고 세상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곳으로 갈 것입니다.”
아직도 매일 아침 말씀 읽기와 기도로 자신의 교만을 털어내야 할 정도로 부족함을 고백하는 조하문목사. 모든 사람 앞에서 ‘낮아짐’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에서 앞으로 그를 크게 들어쓰실 하나님의 계획을 엿보았다.
아이굿뉴스 현승미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