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삶/훈련소사진

365일 해가뜨는 동해를 지키는 해안소초 장병들의 24시

예인짱 2019. 1. 17. 21:37


바닷가를 생각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들...
하얀 백사장과 비릿한 바다 내음, 차가운 바람을 유유히 가르는 갈매기~
손잡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
무릎까지 바지를 힘겹게 걷어올린 어린 아이들의 뜀박질과 웃음소리~
사진기를 들고 드넓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을 담아가려는 사람들~
그리고 해돋이...

동해의 해안가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육군 23사단
강릉, 동해, 삼척에 이르는 200Km가 넘는 해안가 경계임무를 맡고 있다.
23사단은 1975년 8월 1일 동해안 경비사령부 예하의 68훈련단으로 창설되었다.
96년 북한의 무장공비 25명의 잠수함을 이용한 강릉 침투,
98년 묵호항 인근에서의 북한군 사체 발견을 계기로 북한의 침투 능력에 대응하고자
98년 12월 제23보병사단으로 개편되어 영동지역 안보의 중심적 소임을 수행하고 있다.

아름다운 절경과 운치가 남북대치의 상황이라는 긴장감과 어울려 묘한 감정을 불러들이는 곳...
해돋이 명소로 많은 발길이 이어지는 동해 추암해수욕장 인근에서 365일을 주둔하고 있는
23사단 예하 추암소초 장병들의 24시를 스케치 해보았다.


13:30분 야간경계작전을 마치고 아침에 취침에 들어갔던 대원들이 기상한다.
해가 중천에서 약간 서쪽으로 기운 시간에 일어난 장병들의 신체리듬 또한 정상에서 살짝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몇 달 동안 이렇게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중대장 주관하에 소병력으로 구성된 경계조원들은 점호를 마치고 일과를 준비한다.


점호를 마친 14:00가 넘은 시각... 점심식사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기상 후 본격적인 일과에 앞서 식사를 한다.
격오지에서 순환근무를 하고 있는 전방(해안가) 소초 장병들에게 그나마 위로인 것은 부식ㆍ증식비용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한 소규모 단위 부대라 PX가 없고,
지리적 위치 때문에 황금마차로 불리우는 부식차량이 부대안까지 들어올 수 없다.
예전엔 부대 아래까지 연결된 도로에 급식차량이나 황금마차가 오면,
가용한 부대원들이 총 동원되어 짐을 날랐었지만, 지금은 작은 모노레일이 언덕아래까지 설치되어 있어
짐들을 손쉽게 실어 나를 수 있게끔 되어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는 것을 즐거음으로 삼는 식도락(食道樂)이 군에서 있을 수 없지만,
소규모 부대이다 보니 식사는 큰 부대보다 맛있고 자유배식이기 때문에 정량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다.


흔히들 잔반 처리를 위해, 적적한 군생활의 친구삼아, 또는 부대 경계 등을 위해 부대에서 개를 기르는 경우가 있다.
추암소초에서도 숨겨진 1인치의 병력이 있었으니... '추암이'라는 견공이 그 주인공이다.
추암소초에 첫 발을 들였을 때 눈에 띈 것이 추암이라는 개였고,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적고 귀엽기도 하여
시골 앞마당에서 기르는 개와 같겠거니라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낮에는 여느 개처럼 낮잠에 열중이지만, 밤이면 야간순찰조와 함께 해안경계의 최선봉에서 활약하는
부대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라는 것이다. 사람 보다 뛰어난 시각과 후각, 청각을 활용하는 것이다.


일선 부대와 마찬가지로, 순환식 교대근무로 일반적인 생활패턴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추암소초부대원들이지만
군대에서 필수적인 환경미화와 신변정리는 개인에게 할당된 국방부 시계의 의무적인 일부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개인별로 시간이 나는대로 청소, 빨래, 독서, 운동 등에 여념이 없다.


넓고 광범위한 해안가 경계 임무를 맡고 있는 추암소초에는 24시간 감기지 않는 눈들이 있다.
소초와 해안초소 인근에는 주야간 이용가능한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소초에서 근무하는 상황병들은 줌과 패닝이 가능한 감시카메라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판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규모 병력으로 24시간 감시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야간순찰조가 야간 경계작전을 수행하고 아침에 복귀하여 수면을 취하고 있거나 일과 작업중인 그 시각...
주간 순찰은 중대장의 몫이다.
중대장은 필수 요원만 대동한채 수제선과 해안철책의 손실 유무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혹시 모를 적의 침투 흔적이나 유기물 등이 있는지 암벽 아래까지 꼼꼼히 살핀다.



이윽고...17:00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해상박명종(EENT : End Evening Nautical Twilight)
군사용어로 해가 진후의 항해박명을 의미한다.
이 시각 이후로는 육안으로 사물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각 30분 전후로 매복,근무 투입 등 군사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해질무렵 소초에서 바라본 그 유명한 추암 촛대바위다.
짙푸른 바닷물이 만들어 낸 하얀 물거품과 소금끼가 섞인 바람의 마찰로 만들어진 암괴의 기이한 모습이 실로 경이롭다.
해가 육안에서 사라지면서 남기고 간 가시광선이 해안가를 따라 펼쳐진 기암괴석을
바다빛 무채색으로 물들이는 그 시각...추암소초 부대원들은 경계임무 투입을 위해 분주하다.


18:00시... 일선부대에서는 일과과 끝나고 개인시간을 가지고 있을 무렵...
추암소초 장병들은 본격적인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경계작전 투입구역 초입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한 겨울 추위도 별일아니라는 듯 
장병들의 표정은 자연스럽다.


해안소초에서 근무하는 장병은 흐릿한 달빛으로 뭉개진 해안선과 침투가 용이한 주요 위치를 서치라이트로 확인한다.
철책경계 임무에 투입된 장병들은 흔적석, 청음석이라고 불리우는 철책에 끼어놓은 돌과 순찰패를 살피며 이상유무를 확인한다.


07:00경...동해바다 끝...내 시야가 허락하는 저 먼곳에서부터 하늘이 조금씩 밝아져 온다.
해상박명초(BMNT : Beginning Morning Nautical Twilight)  해뜨기 전의 항해박명 시각을 의미한다.
이 시점부터는 사물을 육안으로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군사작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시각으로
동해안경계 임무의 대미를 장식한다.


검푸른하늘과 밝아지는 주황빛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그러데이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멎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야가 확보되는 만큼 해안경계 대원들은 인근 방파제와 해수욕장 등을 돌아다니며 육안으로 해안선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입가를 간지르며 스멀스멀 피어나는 입김처럼 태양이 강력한 붉은색 내뿜으며 본 모습을 드러내면
모든 대원들은 경계작전을 마치고 소초로 복귀한다.
감시와 감상...몇 획의 차이지만 그 의미가 사뭇 다른 것처럼
추암소초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은 일출 광경을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해안에서 근무하는 9개월동안 휴일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그들에게 일출은 하루 일과 중 하나일 뿐이다.





소초에 도착한 야간근무자들은 소초장에게 복귀 신고와 함께 탄약을 반납하고 생활관에서 취침 전 마지막 정리정돈을 한다.
09:00시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난 밤동안 녹초가 된 몸을 따뜻한 물로 진정시키고 나면 나른함과 함께 잠이 몰려온다. 낮과 밤이 바뀐 일상이 그들의 본업인지라 생활관 커텐은 아침과 낮의 햇빛을 충분히 가려줄 수 있을 정도로 두껍다.....

지난 9월 동해의 해돋이 명소인 추암 촛대바위의 유실위험도가 높다는 용역결과가 있었다.
파도로 인한 지반 침하로 기반을 잃고, 그와 함께 풍화작용으로 그 본래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인 모양이다.

추암 촛대바위가 사라지더라도 바람 앞에서 더욱 커지는 불꽃처럼 굳건할,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는 철벽처럼 우뚝 서있을 추함소초 부대원들의 기상과 열정,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철벽정신은 바다같이 넓고 깊은 마음으로 단결하고 화합하는 정신이다."
- 철벽용사신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