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성태원의 날씨이야기(29)
만산홍엽(滿山紅葉)! 온 천지가 붉게 물드는 ‘단풍 시즌’이 눈앞에 다가왔다. 여름 내내 역대 1위의 폭염에 시달렸던 만큼 올가을 단풍에 거는 기대가 예전보다 한층 더 높은 것 같다.
우리나라 단풍은 대개 9월 하순~11월 중순 약 두 달에 걸쳐 나타난다.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 내장산 등 단풍 명산은 물론 동네 야산이나 공원, 길거리, 집 마당에까지 찾아오는 가을 손님이 단풍이다. 단풍은 가을 자연의 하이라이트다. 가을을 즐기는 데는 단풍만 한 게 없다. 그래서 미리 단풍 공부를 좀 해두면 곳곳에 깔린 단풍을 감상할 때 그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다.
우선 올 첫 단풍은 언제 나타나고, 절정기는 언제일까. 이런 궁금증 해소를 위해 9월 들기 바쁘게 민간 기상업체 3곳에서 경쟁적으로 단풍 예보를 내놨다. 5일 케이웨더가, 7일엔 웨더아이와 153웨더(GBM Inc)가 각각 관련 예보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 3개 업체의 예보를 종합하면 올 단풍은 평년보다 며칠 정도 늦게 찾아올 전망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첫 단풍이든, 절정기 단풍이든 평년보다 수일 정도 늦어질 거란 얘기다. 단풍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9~10월 기온이 평년보다 다소 높다는 게 주된 이유다.
민간 기상업체들은 기상청으로부터 관련 기상 원재료를 받아 업체마다 서로 달리 예보 작업을 진행한다. 따라서 업체마다 예측치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설악산 단풍 절정 시기 예측을 예로 들어보면 케이웨더와 153웨더는 10월 18일, 웨더아이는 10월 20일로 이틀 정도 차이가 난다.
첫 단풍 시기 예보도 마찬가지다. 평년보다 케이웨더는 1~4일, 웨더아이는 1~6일 늦을 것으로 내다봤다. 153웨더도 1~5일 늦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속리산, 두륜산 등의 경우는 평년보다 오히려 2~5일 빠를 것으로 예보했다.
따라서 업체마다 예보 차이가 다소 난다는 점을 고려해서 찾고 싶은 지역의 단풍 시기를 잡는 게 중요하다. 이들 업체의 지역별 예보와 임박했을 때의 관련 정보 등을 종합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단풍 구경을 잘하고 싶다면 계속 변하는 단풍 및 기상 정보에 귀 기울이는 약간의 정성이 필요해 보인다.
기상청은 2015년까지만 단풍 예보를 했다. 2016년부터는 ‘기상산업육성’이란 명분 아래 골치 아픈(?) 단풍 예보를 민간에 이양했다. 그 후 3년째 민간업체들이 단풍 예보를 하면서 경험을 축적해 왔다.
참고로 이들 3개 업체의 단풍 예보 내용을 발표순으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케이웨더= 첫 단풍은 설악산에서 평년과 같은 9월 27일 시작하며, 전국이 대체로 평년보다 늦어져 중부지방은 1~2일, 남부지방은 3~4일 각각 늦다. 단풍 절정도 중부 1~2일, 남부 3~5일 늦다.
▶ 웨더아이= 첫 단풍이 평년보다 1일 늦고, 단풍 절정도 평년보다 1~2일 늦을 전망이다. 첫 단풍은 9월 28일 설악산에서 시작하며, 단풍 절정 시기는 설악산 10월 20일, 내장산 11월 6일로 예상된다.
▶ 153웨더= 첫 단풍은 평년보다 1~5일, 절정 시기도 2~6일 늦을 것으로 전망된다. 첫 단풍은 설악산에서 9월 29일 가장 먼저 시작하며, 단풍 절정 시기는 설악산 10월 18일, 내장산 11월 8일로 예상된다.
여기서 첫 단풍이란 산 정상에서부터 약 20%가 단풍이 들었을 때를 가리킨다. 단풍 절정기는 산의 80% 상당이 단풍에 들었을 때를 말한다. 단풍 시기 예보는 8월 강수량과 9월 상순의 실제 관측 기온, 9월 중하순과 10월 예상 기온 등을 토대로 이뤄진다.
단풍은 대개 일 최저기온이 5℃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들기 시작한다. 단풍 시작 시기는 9월 상순 이후 기온의 높고 낮음에 따라 크게 좌우되며 일반적으로 기온이 낮을수록 빨라진다. 평지보다 산, 강수량이 적은 곳, 양지바른 곳일수록 아름답게 핀다.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으면 색깔이 더욱 선명하고 고와진다.
단풍은 산꼭대기부터 시작해서 계곡으로, 북쪽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내려온다. 첫 단풍은 대개 하루 20~25km의 속도로 남하한다. 따라서 북쪽 설악산과 남쪽 두륜산의 단풍 시작 시기는 한 달 정도 차이를 보인다. 단풍 절정 시기는 일반적으로 첫 단풍 약 2주 후에 나타난다.
글머리에서 ‘만산홍엽(滿山紅葉)’이란 말로 단풍 든 모습을 소개했지만 단풍은 붉은색 외에도 여러 가지 색깔을 띤다. 가을이 깊어져 기온이 0℃ 부근까지 떨어지면 나무는 엽록소 생산을 중단하고 잎 안에 ‘안토시아닌’ 성분을 형성하면서 붉은색으로 변한다.
안토시아닌 색소를 만들지 못하는 나무들은 비교적 안정성이 있는 노란색과 오렌지색의 ‘카로티노이드’ 및 ‘크산토필’ 색소를 만들면서 투명한 노란 잎으로 변한다. 이때 붉은색의 안토시아닌과 노란색의 카로티노이드가 혼합되면 화려한 주홍색이 된다. 타닌(Tannin)성 물질이 산화 중합돼 잎 속에 축적되면 갈색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단풍을 즐기지만 나무들 입장에서 보면 화려했던 시절(봄·여름)과 결별하고 월동에 들어가기 위해 격렬한 은퇴를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랑하고 뽐내던 모든 것을 비우고 단출한 자기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결연하게 겨울과 맞설 채비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단풍기 나무들과 50~60대 은퇴기를 맞은 우리 인생의 처지가 서로 비슷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성태원 더스쿠프 객원기자 iexlov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