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일기

"가혹한 기준의 덫"을 돌아보며

예인짱 2015. 1. 5. 03:30

 

 

 

2008년에 쓴 일기를 돌아보며,

그때의 깨달음이 얼마나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소중한 원칙이었는지를 새삼 느낀다.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를 읽으며,

내 스스로 가혹한 기준의 덫에 걸려 있음을 알고,

그 덫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혹한 기준의 덫은 많이 치유된 상태이다.

그 치유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이다.

 

2008년이면 내 안에 내 존재의 구원이 오직 예수로 인해 다 이루어졌음을 믿는 믿음이 성숙되어 있을 때라고 믿었는데,

당시의 글들을 보면 그런 평안이나, 안정감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약간 묘한 충격이 되었다.

 

예수

그분은 내 존재의 모든 값다 이루어주신 분이시다.

내가 인정받고, 내가 추구해야 할 모든 것을 다 짊어지시고 나의 모든 값영원히 다 해결해 주신 분이시다.

 

예수라는 분으로 인한 내 존재의 인정,

그리고 그 안에 내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믿음은 나를 영원한 가혹한 기준의 덫에서 벗어나게 했다.

 

지금도 내 속엔 좀더 완벽하고,

좀더 체계적이고,

좀더 성숙한 모습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내 자신의 성숙을 돕는 일이지,

그것이 내 존재의 값을 자리매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가혹한 기준의 덫에서 벗어나,

이렇게 자유자로,

평안함을 가진 자로 살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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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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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라는 책을 읽었다.

인지심리치료의 대가인 아론 백과 함께 치료현장에 있었던 제프리영이 쓴 책이다.

 

한 인간이 성장과정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기본적인 안정감, 타인과의 연대감, 자율성, 자기표현, 현실적 제한의 여섯 요인으로 분류했다.

 

그것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때,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진 덫에 걸린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인생의 덫은 생각과 감정과 행동, 대인관계를 결정하며 불안과 슬픔, 분노와 같은 격렬한 감정을 일으킨다.

 

여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 이상적 결혼, 주변 사람들의 존경, 직업에서의 성공 등 모든 것들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생을 즐길 수 없고 자신이 한 일을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덫은,

"제발 나를 떠나지 마세요"의 버림받음의 덫

"당신을 믿을 수 없어"의 불신과 학대의 덫

"나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을 거야"의 정서적 박탈감의 덫

"나는 적합하지가 않아"의 사회적 소외의 덫

"나 혼자서는 해낼 수 없어"의  의존의 덫

"언제 재난이 닥칠지 몰라"의 취약성의 덫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야"의 결함의 덫

"난 실패자인 것 같아"의 실패의 덫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게요"의 종속의 덫

"난 아직 많이 부족해"의 가혹한 기준의 덫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다 가질 수 있어"의 특권 의식의 덫으로 구별한다.

 

난 이러한 덫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체크리스트를 체크하면서 내게 너무도 심각한 덫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혹한 기준의 덫

"난 아직 많이 부족해"의 덫이다.

 

충격이었다.

난 이것을 덫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나의 기준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의 덫이라는 것이다.

 

가혹한 기준의덫에 걸린 사람은,

스스로 설정해 놓은 극단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처참할  정도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행복과 기쁨, 건강, 성취감, 대인관계에서의 만족을 희생한 채, 지위, 돈, 성취, 질서, 인정 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이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매사를 깐깐하게 따지려 든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최고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받아왔으며, 최고가 아니면 모조리 실패라고 알고 있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은 항상 불만족스러울 뿐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꼭 맞는 말이다.

정말 내가 그렇다.

나를 꼭 찝어서 한 말처럼 들린다.

 

이 덫을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하겠다.

 

난 많은 부분에 너무도 강력한 원칙과 기준을 적용한다.

완벽주의와 결벽증이 자리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기준을 내게만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이에게도 가짐으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걸 참느라 애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흐름들을 바꾸어 낼 기회를 삼아야 겠다.

가혹한 기준의 덫, 이것을 훨훨 벗어던지길 소망한다.


날짜:
2008.12.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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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기준의 덫을 가진 사람은,

첫째, 압박감을 경험한다

절대 긴장을 풀고 인생을 즐길 수가 없다.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가도록 재촉하고 재촉하고 또 재촉한다. 자기가 하는일은 그 일이 무엇이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둘째, 부정적인 감정들을 초래한다. 

스스로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끊임없이 좌절하고 화가 나며 만성적인 본노와 심한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해내야 할 다음번 과제에 사로잡혀 있다.

 

셋째, 시간에 대한 급박함이다.

불안의 초점은 시간이다. 할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항상 시간을 의식하며 지속적으로 시간의 압박을 느끼고 인생의 잔혹함과 자신이 성취한 것의 공허함으로 인해 우울해 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넷째, 평화로운 상태를 얻지 못한다.

분투끝에 평화로운 얻기를 희망하는 상태가 됐다 하더라도 평화로운 상태는 결코 오지 않는다.

그런 상태가 찾아왔다 하더라도 뭔가 다른 것을 찾아 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덫은 스스로 강화된다. 깊은 마음속에서 애써 노력하지 않는 한 절대 편치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정말 그렇다. 난 이게 너무도 당연한 나의 구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덫이라는게 한없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가혹한 기준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기준을 부모의 높은 기대치로 본다. 당신이 높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부모로 부터 당신에게 수치심을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본다.

 

나의 가혹한 기준의 덫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부모님은 그렇게 엄격하지도, 완벽을 요청하지도 않으셨다. 나의 가혹한 기준의 덫은 신앙을 하면서부터 생긴 덫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절대기준에 부합하려는 의지,

그분에게 인정받으려는 강력한 의지와 노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기준에 맞추어 그 기준의 사람이 되려는 의식이 나로 가혹한 기준의 사람이 되게 만드는 원인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교회의 목사로서, 교회를 세워가는 기준과 원칙이 최고를 추구하고, 최고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력한 강박관념이 지나친 기준으로 자리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혹한 기준의 덫을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일과 즐거움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고, 너무 많은 것을 성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고, 기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여러 활동들이 완수해야 할 의무로만 느껴지게 되고, 높은 기준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게 되어 결국 그 일을 피하게 되고, 높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함으로 짜증이 나고 좌절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가혹한 기준의 덫 변화시키기

 

1. 모든 것으로 부터 완벽하게 인정받길 원하는 마음의 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요, 하나는 성도들께 인정받는 것이다. 이 두가지 주제가 나를 짓 누르고 나로 압박감을 갖게 하는 요소이다.

 

내게 있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으로 세움입어 가야 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명제이다. 이 주제를 바꾸면 존재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것이 목회의 근본이요, 이것이 목회의 현장이다. 이 현장을 유지하지 못하면 나의 목회는 생명력이 상실한 목회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것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그것이 가혹한 기준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준에 충실하게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

 

문제는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는 기준이다. 이것은 참으로 가혹하다.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희생과 수고는 참으로 지나칠만큼 나를 힘들게 한다. 이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을 하지 못하며 지내다가 결국은 모든 것을 놓치는 것을 반복한다.

 

이 기준을 바꾸어야겠다는 강한 결심을 한다.

 

2. 시간을 잘 분배하여 가혹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가혹한 기준을 가진 사람은 종종 전체적인 조망을 잃는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시간은 나누어 써야 한다. 그런데 난 시간을 나눌줄 모른다.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면 그 주제에 올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100아니면 0이 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철저히 가혹한 기준의 덫에 걸린채 압박감에 시달리며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시간을 잘 분배하여 집중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집중력과 그렇지 않은 일에 분배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균형잡힌 스케줄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진행되면 많은 부분에서의 가혹한 기준의 덫은 점점 힘을 잃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그 안에서 여러가지 원칙과 기준을 통해 압박과 강박에서 벗어날 대안을 연구해 나가야겠다.

참으로 중요한 전환을 얻게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를 얻게 된것이 너무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