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상담심리학

'건강한 정신'이란 무엇인가?

예인짱 2010. 6. 7. 08:53

정신치료에 대한 외부 강의 때문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몇 몇 학자들의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건강한 정신이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병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그 원인을 날카롭게 지적하지만 건강한 정신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대부분 학자들의 연구가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이 치료한 환자들의 상태에 기초해서 이론을 만들었기에 아프고 상처받은 마음을 분류하고 정의한 것이 많은 데 반해 건강한 정신에 대한 기술은 상대적으로 적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정상이란 이런 것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하는 태도 자체가 도그마이기 때문이다. 정상을 편협하게 정의하는 것 자체가 병든 마음을 더 병들게 하는 문화적 현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들지 않은 것이 어쩌면 정상일 지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에서 글을 써 봤다. 

 


제일 먼저 떠오른 이는 칼 구스타프 융(C.G. Jung)이다. 융은 일단 콤플렉스라는 “감정적으로 강조된 심리적 내용”에 의해서 삶이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콤플렉스의 특성은 무의식적이어서 당사자는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러한 콤플렉스 뿐 아니라 융은 페르조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열등기능 등과 같은 표현을 통해서 삶이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무의식에 의해서 이리 저리 휘둘리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결국 융이 생각하는 건강한 정신을 지닌 인간은 자신의 보고 싶지 않은 면, 자신의 치부를 제대로 직면하고 감당해내면서, 고통 속에서 성장하는 인간인 듯하다.

 


그 다음 떠오른 것은 에릭슨(Erikson)이다. 에릭슨은 삶에 있어서 그 나이에 맞는 과제가 있다고 했다. 그 과제를 잘 이해하고 이행하게 되면 삶에 대한 주체성을 확보하게 되고 그 과제를 이행하지 못하면 삶에 대한 주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성인기가 되면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가지고 가족과 타인에 대해서 책임감 있게 돌보아야 하는데, 아직도 어릴 때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애정만을 요구하게 되면, 나는 주체성을 확보할 수가 없다. 받을 만큼 충분히 애정을 받는 것이 건강한 단계가 있는가 하면,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남과 나눌 수 있을 때 건강하다고 인정받는 단계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건강한 정신이라는 것이 그 입장과 나이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웠다. 나이에 따라, 어쩌면 에릭슨은 기술하지 않았지만 각자가 처한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적응하면서 자신의 몫을 해서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건강한 정신일 것이다.

 


maslow.jpg 마슬로우(Maslow)의 인간의 욕구단계설도 많은 참고가 되었다 (좌측 그림 클릭하여 참조하세요.-편집자 주). 나는 어렸을 때 마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읽으면서 무조건적으로 자기실현을 하고 절정경험(Peak experience)를 가지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하루 강요된 공부양을 하기에도 버거운 순간에도 순수한 자기만족에 대해서 꿈꿨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내가 마슬로우를 오해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의 현실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고 헤쳐 나갈 고난이 가득 차 있을 때 절정경험에 집착하면서 현실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미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반대로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여가 시간도 있는데 계속 불안함 속에 돈을 모으려고 아등바등 대고, 어떻게 하면 유명해져서 주위에 인정을 받을까만 집착을 한다면 그것도 올바르지 않는 것이다. 결국 내가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서 안전을 확보하고, 안전을 확보한 다음에는 단지 살아간다는 것 이상의 삶의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즉 에릭슨이 나이에 따라서 건강한 정신이 추구해야 하는 바가 다르다고 했듯이, 마슬로우는 우리가 처한 경제적, 사회적, 생물학적 환경에 따라 건강한 정신이 추구해야 하는 바가 다르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환경을 개척해 가면서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은 진짜 큰 행운일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입장을 모두 통합한 입장을 찾아 볼 수 있던 것이 브루노 베텔하임이 쓴 [옛이야기의 매력/김옥순 외 옮김/시공주니어]라는 책의 서문에서였다. 브루노 베텔하임은 2차 세계대전 중 가족들이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사망하고 본인은 살아남았다. 같은 경험을 한 빅터 프랭클이 그러했듯이 브루노 베텔하임에게도 삶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과제는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었다. 그에 따르면 삶의 의미란 특정한 나이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 의미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정신적 성숙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정신적 성숙은 오랜 시일에 걸친 자아 발전의 최종적 결과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마다의 정신연령과 이해 수준에 알맞게 고민하며 탐색한 의미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삶의 의미가 찾아진다고 그는 [옛 이야기의 매력]에서 주장한다.

 


결국 건강한 정신이라는 것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 삶인 것 같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때때로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대면해야 할 때도 있다. 나의 부족한 점, 고통스러운 점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남에게 투사하지 않아야 한다. 현재의 괴로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환상의 세계로 달아나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안락과 편안함, 그 권태로움에 익숙해져 늪에 빠지듯이 천천히 정신이 죽어가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건강한 정신은 항상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 이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전에는 감당할 수 없기에 저기 치워 놨던 새로운 과제가 내 앞에 들이닥칠 때니까 말이다. 그 과제를 해결하고 나면 더 큰 과제가 들이닥치고. 그렇게 하나하나 과업을 해결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그러한 성장을 회피하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한 정신, 어쩌면 위대한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출처 : 의사들이 만든 무료 의학 상담 게시판 http://www.medicalize.comhttp://www.medicalize.com/doctors/33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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