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인간관계훈련

따돌림을 이기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인짱 2010. 6. 7. 08:25

따돌림을 당할 때 받는 상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게 마련이다. 남을 따돌리는 이들은 대게 상대방을 조롱하고, 창피를 준다. 따돌림 받는 이는 수치심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수치심은 사람을 위축되게 한다. 나 같은 것의 이야기 누가 들어주겠냐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당하면서도 막상 남의 도움을 청하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설혹 도움을 청하더라도 학교 선생님, 직장상사, 군대상급자가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 못하는 것 같아 상처 받기가 쉽다. 양쪽의 얘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을 그들이 얘기하면 나를 못 믿는구나 생각을 하고 괜히 말을 꺼냈다고 생각을 한다. 아직은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고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그 때 확실히 개입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때도 혼자 잠자코 있을 것 괜히 말을 꺼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따돌림이 계속되면 혼자서 해결을 하려고 전전긍긍하거나 포기한다.


어떤 형태로던 폭력이 동반되는 경우는 굴욕과 공포가 야기된다. 흔히 왕따라 불리는 경우 처음부터 심한 폭력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씩 그 강도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따돌림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점점 무리한 요구를 한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폭력이 동반된다. 나중에는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사람이 아닌 그냥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대상쯤으로 여기게 된다. 피해자가 굴욕 때문에 상처받다 보면 감정 자체가 메말라버리는 것이다. 감정을 느끼면 괴로우니까 감정을 느끼는 장치가 일시적으로 작동을 안 하게 된다. 그러면서 따돌리고 자신을 괴롭히던 집단 속에 포함이 되어서 남을 괴롭히게 되기도 한다. 어떤 점에서 폭력의 공포가 주는 스트레스가 외상후 스트레스와 유사한 상황이 되면서 자신의 의지가 자취를 감추고 겁에 질려 수동적으로 따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따돌림은 수치, 굴욕, 공포 등의 감정을 동반한다. 하지만 따돌림에 의해서 받은 마음의 상처에 고유한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외로움이라고 생각을 한다. 따돌림의 특징은 집단이 개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데 있다. 체제가 그 체제에 속한 개개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 그것은 소외라는 사회적 현상이 된다. 개인이 개인에게 주는 마음의 상처와 달리 따돌림은 집단이 개인에게 주는 마음의 상처이기에 외로움과 소외감이 동반된다. 외로움과 소외감 때문에 개인이 위축이 되고 자기주장을 못하고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절망감에 빠질수록 따돌림과 왕따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따돌림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외로움에 대해서 다른 의미를 두고, 외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따돌림의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인간만이 지닌 묘한 감정이다. 일부 동물 중에서는 짝짓기 시기나 새끼를 양육하는 시기를 제외하면 혼자 살아가는 동물도 많다. 만약에 그 동물이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인간의 외로움은 그들에게 있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다만 그러한 동물들도 자신이 스스로 사냥을 하고, 방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지면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반면 무리를 이루어 사는 동물들은 혼자서 떼어 놓으면 지루함과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다. 무리를 이루는 동물인데 동물원에서 혼자서 살게 하면 신경쇠약에 걸려 자신을 자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외로움이란 심심함, 지루함, 두려움이 합쳐진 감정일 것이다. 그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서 혼자 있게 되면 사람 목소리라도 들어야겠다고 하면서 텔레비전을 틀어 놓게 되는 것이고, 문자를 날리는 것이고, 편지를 쓰는 것이다.


학교에서 따돌림이 은밀히 시작되는 시기 중 하나가 신입생들이 들어오는 신학기 초라고 한다. 적응하지 못해서 혼자서 다니는 아이가 표적이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대도시에서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지만, 과거에는 이사를 갔는데 이웃들을 먼저 찾아가서 어울리지 않으면 동네에서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민이나 유학도 비슷하다. 새로운 환경은 사람을 긴장시킨다. 그리고 그 때 집단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사실 사람들이 나를 따돌리는 측면도 있지만, 내가 사람들에게 잘 다가서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외로움에 지치게 되면 인간은 나약해진다. 나약해지면 허점이 노출된다. 그러면 따돌림이 시작한다. 따돌리는 사람들은 따돌림의 명분을 만든다. 상대방의 뭔가 다른 점을 찾아서 그것을 이상한 점으로 인지조작을 한다.


img_12_7_1.jpg  그런데 왕따를 하는 애들이나 누군가를 따돌리는 이들도 집단을 크게 보면 집단 내에서 그들 역시 따돌려지는 소집단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동급생이나 후배를 못살게 굴고 왕따를 하는 아이들이 과연 학교에서 주류냐 하면 주류가 아니다. 대한민국 교육에서 학교의 주류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 최소한도 대학에 갈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다. 주류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들은 자신들끼리 비주류 소그룹을 만든다. 그래서 주류에 속하지 못한 아이들을  자신들의 비주류 그룹 안에 들어오게 하려고 한다. 군대건, 회사건, 어떤 조직이건 간에 남을 따돌리고 힘들게 하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인 경우가 있다. 이들이 소수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들이 감정의 욕구를 위해서건 아니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건 뭉치면서 희생자를 찾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커다란 주류에 속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비주류 집단이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했다가도 얘는 재미가 없어 혹은 얘는 만만치 않아 하면서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에 지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비주류 집단이 하이에나처럼 희생자를 물어뜯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한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는데 전학을 간 다른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외로움이라는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비주류소수 집단이 그 냄새를 맡고 또 접근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보면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가장 불쌍하지만 왕따를 하는 아이들도 패륜으로 몰아서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그 아이들 중 주도를 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아이들은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그냥 평범한 보통아이들인 경우도 많다. 자신들 역시 커다란 주류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남을 따돌리는 것이다.


인간은 의존적인 성향이 있는 동물이다. 아프리카 영양이 태어나서 얼마 안 되어서 걷기 시작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인간은 태어나서 혼자서 먹고, 씻고, 이동을 하고, 판단을 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생겨서 신생아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신생아 중에서 자신의 힘으로 생존해서 어른이 될 이가 과연 있을까? 아마도 인간은 멸종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상당부분을 생존 그 자체를 위해서 부모와 사회에 의존한다. 그러다가 보니까 혼자 있는 것은 무언가 이상한 것이라고 여긴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간 다음에는 만나는 어른들마다 네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니 하고 물어본다. 친한 친구가 몇 명이니 하고 물어본다. 부모형제, 친구, 직장동료 항상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짓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인간은 의존적 동물이다.” 가 될 수 있다. 그러다가 보니 혼자가 되어 있다는 것은 마치 무슨 열등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마치 무슨 커다란 이상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 속에 있을 때도 의미가 있지만 홀로 존재할 때도 그 자체로 삶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음식,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영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음악, 우리가 좋아하는 형태의 삶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삶도 있는 것이다. 외로움을 피하는데 급급하다 보면 내가 원치 않는 것들을 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진다. 밥을 먹고 싶지 않는데 혼자 밥 먹고 싶지 않아서 남들이 먹으러 가니까 식당으로 따라가기도 한다.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도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아서 모임에 나간다. 꼭 입고 싶은 스타일의 옷이 있는데 남들이 뭐라고 할까봐 친구들과 비슷하게 입는다. 그런 것들 역시 알게 모르게 우리를 힘들게 한다.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외로움의 순간은 내가 원치 않았지만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자신만의 삶을 찾고 싶어서 일부러 인간관계를 무시하고 고독의 순간을 찾기도 한다. 혼자서 티베트로 여행을 떠나는 이도 있고, 모두 잠든 밤에 혼자 기도를 하는 이도 있다. 외로움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외로움에 처했을 때 마음의 빈 공간을 인간관계로 가급적 빨리 채우려고 급급하다가 보면 빠지게 되는 것이 따돌림의 덫이다. 당신이 원래 의도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외로움이 찾아왔을 때 그 외로움을 거부하지 말라. 외로움은 당신이 보다 당신스러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변화하고 성숙될 수 있지만, 침묵의 시간, 나만의 시간을 통해서도 변화하고 성숙될 수 있다. 외로움을 통해서 한 단계 삶이 성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당신의 주위에는 당신과 어울리고 당신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외로움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외로움은 모든 형태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벌거벗은 나 자신을 대면할 수 있는 성스러운 순간이다. 신화나 전설에서 누군가 신을 직면할 때 그는 항상 혼자였다. 외로움의 순간을 온전히 감당하고 견디어 낸다면 당신은 당신 안의 신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출처 : 의사들이 만든 무료 의학 상담 게시판 http://www.medicalize.comhttp://www.medicalize.com/doctors/6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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