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분당우리교회 주일예배에서 이찬수 목사는 ‘요셉의 창고를 열자’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이날 이 목사는 분당우리교회가 향후 과감한 나눔의 사역을 펼치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그는 요셉이 창고를 열어서 기근으로 큰 위기에 처한 형제들을 ‘조건 없이’ 도와준 것처럼 분당우리교회가 ‘교회의 창고’를 열어서 사회에 필요한 사역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 목사가 밝힌 요셉의 창고 열기 프로젝트에는 성남에 15억원을 들여 다문화가정센터를 건립하는 것을 비롯해 저소득층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에듀 넥스트 사역, 지역 복지 사업, 월드비전 및 컴패션 등과 함께 하는 나눔 사역 전개 등이 들어 있다. 또한 동탄에 교회를 개척하고 총신대에 기도실을 만들어 주기, 100개의 미자립 교회 돕기 등 대교회적 사역도 펼친다.
2002년 5월 분당 이매동의 송림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창립된 분당우리교회의 교세는 2009년 12월 현재 장년 출석 1만여명(어린이 포함 1만3000여명)이며 연 예산은 약 12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우선 32억여원이 이 프로젝트에 사용된다.
이 목사는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안식년을 가졌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미국 패서디나의 풀러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1년 예정인 안식년을 조기에 마치고 9월 초부터 사역 현장으로 복귀했다. 이 목사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9개월 동안의 안식년 기간에 하나님께서 ‘요셉의 창고를 열라’고 명하셨습니다. 창립 이후 하나님은 이유 없이 우리 교회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안식년 동안 주님이 우리에게 베푼 것은 우리만 먹고 잘살라는 뜻이 아니라 창고를 열어서 나눠 주라는 의미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이 목사에게 “더 이상 진단만 하지 말고 바로 창고를 열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관념적이 아니라,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전폭적인 지역 사회 돕기에 나서기로 했다.
“분당우리교회나 한국교회의 갈 길이 어디인가에 대해서 탁상공론할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교회의 창고를 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로 교회가 제 정신을 차렸구나’라고 감탄할 정도의 획기적 변신이 필요합니다. 큰 교회는 큰 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대로 창고를 열고 나눠야 합니다.”
그는 교회의 창고를 열기 위해서는 먼저 창고를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창고를 열었을 때에 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창고가 채워져야 합니다. 무엇으로 채웁니까? 영성입니다. 영적 회복을 통해 교회 내면의 곳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에서 예배가 회복돼야 합니다. 그래야 줄 수 있습니다.”
분당우리교회는 주일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워낙 빠른 시간에 비약적으로 부흥했기 때문에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아이들 교육 시설 마련이 시급하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교회도 건축해야 하고, 교육관도 마련해야 하는데 이런 거금을 쓰는 것은 정신 나간 일 아니냐’고요. 교회니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니까 세상이 보기에 ‘정신 나간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목사는 교회는 결코 이윤 창출이 지상과제인 회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헌금을 걷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한국교회가 궤도를 이탈했다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 내 교회의 흐름은 정상치에서 벗어났다고 누구나 인식합니다. 이 흐름을 역류시킬 물줄기를 바로잡아야 하는 데 지금의 교회에는 그 힘이 없습니다.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미분, 적분을 한다고 설쳐댔는데 정작 구구단을 외우지 못한 꼴이지요. 이제 한국교회는 먼저 구구단을 외워야 합니다.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적 회복과 나눔은 구구단을 외우는 것입니다.”
그는 크리스천들에게 본질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에 따르면 영성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제자 훈련하고 새벽기도 드리며 큐티를 하는 모든 이유는 오직 하나다. 바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이 목사의 말을 들으면서 이 시대 복음주의 지성인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의 고별 설교의 내용이 떠올랐다. 스토트 목사는 2000년 7월 17일 행해진 고별 설교에서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라면서 예수님을 닮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말을 이었다. “본질인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것보다는 열매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니 힘이 나올 수 없지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분이 교회 공동체를 주도합니다. 목사는 그 뒤에서 수종을 드는 사람입니다.”
이 목사는 자신이 원론적으로 말하지만 그 역시 100% 본질을 추구하는 목회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세상에 순응한 측면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실 세상 질서와 역행해 가는 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로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목사는 요셉의 창고 열기 프로젝트는 옵션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세상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할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분당우리교회 같은 규모의 교회는 개교회 차원을 넘어서 한국교회 연합 사역에 활발히 참여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직 용량이 되지 않습니다. 내 교회 하나 제대로 맡아 사역하기에도 역부족입니다. 물론 여력이 있으면 당연히 연합 사역에 뛰어들어야지요. 용량이 되지 않는데, 교회 일을 줄이고 다른 일 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맡겨 준 양떼에게 민감하고 싶습니다. 먼저 목회자나 성도들이 ‘내 교회’에서 포만감을 느껴야 합니다. 목사나 성도나 자기 교회에 대한 기대감이 부족한 가운데 연합한다고 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물론 언젠가는 저도 한국교회 전체를 위한 사역에 매진할 것입니다.”
글=이태형 선임기자, 사진=최종학 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