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찡한 하루를 살았다.
밤에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새벽 일찍 눈이 뜨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의 자리라고 정의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추구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 반대였다.
난 부끄러움의 존재였다.
그것을 난 괴로와했다.
내 믿음에 회의를 가졌다.
내 존재 자체에 한계를 가졌다.
난 안될 거라는 막연한 거부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난 의와 진리와 거룩함에 신앙을 몰입했다.
그건 신앙이 아니다.
그건 율법주의자의 그것과 동일하다.
하나님이 원하는 나의 신앙은 용서받음에 있다.
용서받음이 내 존재의 절대값에 있다.
그것이 내 존재의 값이요, 내 신앙의 값이다.
난 오늘까지 용서의 현장에 있었고,
그것을 통해 용서의 값을 갖고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난 용서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
그게 내 삶의 자리이다.
내가 너를 용서해줌 같이,
네가 다른이를 용서하는 현장을 만드는,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관계의 현장인 것이다.
일흔번씩 일곱번,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은 자로서 백 데나리온을 용서하는 삶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내게 요청되는 용서는 작은 것이다.
말투, 작은 행동하나, 작은 실수 하나,
이런 것들을 기억하며 그것에 의해 그 사람을 평가하고 낙인찍는,
그것이 미움을, 분노를, 단절을 만드는 근거가 되는,.
이 모든 것을 마귀적인 것이다.
마귀가 좋아할 일이다.
거기엔 기쁨이 없다.
기쁨의 관계를 세우지 못하는 현장에 어찌 기쁨이 자리할 수 있는가~!!
용서가 없는 기쁨의 관계는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나를 보는 눈을 바꾸자.
그리고 다른 이를 대하는 눈을 바꾸자.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절대 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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