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게 주어진 행복은 '감사' 때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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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튼대학에서 만난 '지선아 사랑해' 주인공 이지선 자매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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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문종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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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첫째 주.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미시건 호수를 끼고 있는 시카고 휘튼 대학에서는 유학생 수련회 'Kosta(KOrean STudent Abroad)'가 열리고 있었다. (Kosta란, 미국에 흩어져 있는 크리스챤 청년들이 모여 집회를 하는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인생과 신앙을 점검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한 가운데 저녁집회 후 군중 속에서 해맑은 웃음으로 휘튼 대학 대강당을 빠져나오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이지선. 누구나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예기치 않은 화상으로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고 그 절망스럽고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오히려 더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진 그녀. 그녀는 2003년 TV 다큐 인간극장에서 자신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그 해 '지선아 사랑해'라는 베스트셀러 책을 펴냈고, 2년 뒤 일상 생활을 공개하며 사회로의 복귀와 꿈을 위해 도전하는 두 번째 수필집 '오늘도 행복합니다'를 펴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기자는 시카고 휘튼 대학 현지에서 화상으로 얼룩진 일그러진 자화상을 밀어내고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생기있고 아름다운 청년 이지선을 만나 40여분간 인터뷰를 나누었다.
▲ 불의의 사고로 삶의 절망을 맛보았으나 인내와 소망으로 극복하고 다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지선씨. © 문종성 | | 한동안 책 발간도 없고 홈페이지 관리에도 뜸했던 그녀의 요즘 근황은 어떨까?
"계속 보스턴에서 학교 다니고 있었어요. (그녀는 현재 보스턴 대학 재활상담학 석사과정 중에 있다) 그리고 장애인들 상담하는 인턴십을 하고 있구요. 근데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랄까, 처음엔 일이 너무 어려워서 화장실가서 펑펑 울기도 했어요. 1주일에 16시간 정도 일하는 지금은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요. 아마 사고를 안 당했더라면 유아교육과를 전공하면서 유아심리 쪽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놀이치료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벌써 일 년 뒤면 이제 졸업이네요.
그리고 요즘은 취미로 음식 만들기를 한답니다. 요리 사이트 보면서 요리해요. 국종류 만드는 걸 좋아하구요, 잡채에도 도전하고 있어요. 김밥도 잘 만들고…. 뭐 제 실력이 꽤 괜찮거든요? 하하. 맛있어요. 정말 뭘 해도 맛있어요. 스트레스 받으면 음식 만들고 사람들을 대접하곤 해요."
처음 만난 그녀는 새내기 대학생들처럼 무척이나 쾌활했다. 묵직한 인생의 굴레를 벗어난 청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를 만난 인터뷰 장소가 세계적인 설교가 빌리 그래함 목사를 배출하고, 코스타(Kosta)가 열리는 휘튼 대학인만큼 그녀에게 먼저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신앙에 대해서 질문해 보았다. 그녀에겐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녀를 지탱하는 힘, 신앙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전 성경 말씀 중에 시편 40편 1~3절 말씀을 참 사모해요. 제 삶과 같거든요.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이 말씀은 제가 사고를 당한 후 화상치료를 받았을 때 상황과 너무 똑같은 구절이에요. 의지가 되었던 말씀이죠. 그리고 3절이 기가 막히는데요.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이 구절처럼 전 지금도 조금씩 말할 수 있는 삶인 것 같아요. 하나님을 너무 좋아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말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라는 것에 대해 말이죠.
그리고 사실 전 제 외모가 전혀 귀엽지가 않은데 귀엽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서른 번에 한 번이라도 예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여잔데…. 그런데 어느 날 시애틀의 한 교회에서 간증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는데 정말 제가 예뻐보이더라구요. 그 때가 제 기도가 가장 멋지게 응답된 순간이었어요. 정말 많은 은혜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 너무 감사할 수 있었던 일이었어요.
제게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사랑이시기 때문에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의 원인과 결과까지도 사랑으로 다스리시죠. 그게 진리에요. 제게 보내주신 분들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사고 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이지선씨의 모습이다. <지선이의 주바라기> 홈페이지에서. ©문종성 | | 그녀의 나이 어느 덧 서른. 오랜 힘겨움으로 점철된 20대를 벗어나 이제 가정을 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준비를 해야할 시기이다. 그녀도 여자로서 자신의 삶을 찾고 싶을 터. 궁금하기만한 그녀의 이상형에 대해 살짝 물어 보았다.
"이상형이요? 이상형에 대한 기도를 구체적으로 해야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기도하다가 얼마 전에 3개로 줄였거든요. 어떤 분이 그러시던데 3개로 줄이면 때가 되고 준비가 된 거라고 그러시더라구요(웃음).
음, 첫 번째는 7:3정도로 저를 더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아름다운 황금비율이 아닌가 싶어요. 두 번째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역자라는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선교사나 목사로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착하고 온유한 사람이 좋아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거든요. 누군가 분노를 터트리면 잘 감당이 안 되더라구요. 김동호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이로써 필자는 이지선씨의 이상형이 아님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지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화상'이라는 단어이고, 아마 그 때문에 그녀는 숱하게 그와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게 바로 그러한 부분이다. 화상 치료라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통해서도 감정이 격했던 부분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과 갈망했던 부분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잊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치유됐어요. 기억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요. 아, 하나 생각이 나네요. 화상 피부이식 수술 때 살이 매끈하게 붙으라고 옷을 입어요. 그 당시에는 별 소용이 없어 보이고 힘들어서 안 입었는데 다른 환자들이 그 옷을 꾸준히 입고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 저도 참았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갈급했던 거라면, 글쎄요. 평범한 생활? 젓가락질이라든가 친구들이 집으로 오지 않고 밖에 나가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회사 다니고 퇴근하고,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등 지극히 평범한 거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했죠.
그리고 수술 중에 이런 점들을 느꼈어요.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저를 대하는 병원 의료진에 대한 태도에서 안 좋은 기억이 있었어요. 사실 그 때가 힘들더라구요. 수술실에선 정말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정말 외로운 그 순간, 친구나 엄마조차도 들어올 수 없을 때에 예수님이 대신 내 손을 잡아주셨어요."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그녀가 얼마나 길고 어두운 인내와 시련의 시간을 견디어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그녀는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고자 특별해지고 싶은 요즘 시대에 도리어 평범해 지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어쩌면 그것은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002년 일본에서 오빠 등에 업힌 이지선씨. 그녀는 "이 사진은 홈페이지에도 올릴 수 없는 사진"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이 모습이 아니라서 아주 편한 마음으로 기쁘을 나누고자 한다"고 했다. © 문종성 | | 네이버 검색창에 그녀의 이름을 치면 작가라고 소개된다. 아마 처절한 생의 의지와 진솔한 삶의 희망을 포개어 담은 수필집으로 2003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지선아 사랑해' 때문인 것 같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책 판매부수와 함께 TV출연 및 책 발행과 각종 강연 등으로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난 후 어떻게 삶이 변화가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일단 책은 많이 팔렸어요(웃음).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더 좋았어요. 책을 금전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순수하게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어쨌든 책 안 읽는 시대에 읽어준 분들이 고마워요. 그리고 편지, 이메일을 많이 받았거든요. 일일이 답장은 못했지만 소설을 쓴 게 아니라 하나님이 쓰게 하셔서 내용에 생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고마워하시는데 사실은 오히려 제가 더 고맙죠. 자살하려고 했다가 제 책을 읽고 위로를 얻었다는 분, 자기 동생이 화장실에서 제 책을 읽고 교회를 갔다는 얘기, 또 신앙이 흔들렸는데 제 이야기를 보고 몇 년 만에 교회에 나갔다는 분 등, 제가 어떻게…."
그녀는 자신이 능력도 부족하고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사람들이 변화받는 것에 대해서 놀라워하는 눈치다. '내가 이랬기 때문'이 아닌 '내가 어떻게'라는 겸손한 그녀의 인격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는 말을 계속이었다.
"사실 저를 가까이서 보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거나 전도가 안 될 수도 있어요. TV(지선아 사랑해-인간극장) 출연 이후론 살기 편해졌구요. 동정도 없어지고, 오해도 없어져서 좋았고, 무엇보다 특이한 사람들이 편하게 사는 세상을 원하거든요. 화상환자 볼 때 저를 봤던 기억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게 참 좋더라구요."
▲ 휘튼 대학에서 밝은 모습으로 V자를 그려보이며 포즈를 취하는 이지선씨. © 문종성 | | 이제 그녀는 어느 정도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주어진 인생 제 2막을 살고 있다. 그러기에 앞으로 그녀의 꿈이 궁금하다.
"기도 중에 있습니다. 내년에 졸업을 하게 되는데요. 여러 가지를 열어 놓고 생각 중이에요. 전문 상담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신앙적으로 성령과 부흥을 위해 사역자로 쓰임 받고 싶기도 하구요. 올해 3월 뉴욕 화요 성령집회 때 김우현 감독님(다큐영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연출)의 메세지를 듣고 너무 감격했어요. 정말 다 때려치우고 그 분이 하는 일에 따라가고 싶을 정도였거든요. 정책적인 걸 공부해서 장애인 정책을 통해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최종 목표는 보건복지부 장관? 히히.
음, 그리고 요즘은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병원에 있을 때 이정희 선생님과 일본에서 이용규 목사님께서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어 주셨어요. 저에게 사랑과 관심을 준 분들은 정말 많은데 지금은…."
멘토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을 때 필자는 '아마 배우자가 지선씨의 진정한 멘토가 될 것이다'라고 답해주었더니 돌연 생기가 돌며 아멘으로 답했다. 영락없는 소녀같은 모습이다.
▲ "내게 주어진 행복은 '감사' 때문이다"라고 고백하는 이지선 씨. 많은 청년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고 있다. © 문종성 | | 그녀는 분명 작금의 청년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 중에 하나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저는 가장 크게 받은 은사가 '감사'에요. 옛날에는 감사가 없는 삶을 살았는데 지금 제게 주어진 행복은 감사 때문인 거 같아요.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어느 한 사람 평범한 인생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일들 앞에 조악한 의미로 빠져나가려 할 때 마음이 아파요. 감사할 수 있다면 다른 걸로는 채울 수 없는 채워짐이 있을 것인데 말이죠. 감사는 육체적 고통도 이겨내게 하죠. 감사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 이지선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지선이의 주바라기' 첫화면. © 문종성 | |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홈페이지(지선이의 주바라기 http://www.ezsun.net/)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북적거린다. 앞날이 두렵고 불분명한 삶에서, 신앙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삶에서, 모두가 함께인 듯 하지만 돌아보면 소외된 삶에서 그녀를 통해 도전받고 위로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말보다 지신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 아름다운 청년 이지선. 그녀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고요한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등대가 되길 기대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