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삶/역사,추억이야기

국보 31호--경주 첨성대 [慶州瞻星臺]

예인짱 2008. 12. 6. 22:16

경주 첨성대 []
 
종   목   국보   31호
명   칭   경주첨성대
  (慶州瞻星臺)
분   류   첨성대
수   량   1기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시   대   신라시대
소유자   국유
관리자   경주시
국내에 삼국시대의 석조 건축물이 몇 가지 있으나, 그 중에서도 첨성대(瞻星臺)가 가장 오랜 천문대(天文臺)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더욱 귀중할 뿐 아니라, 현존하는 천문대 중에서는 동양에서 가장 오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대석(地臺石)과
기단은 4각형으로 8석과 12석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27단의 아래가 넓은 원통형 주체부(主體部)가 있는데, 여기에 쓰여진 돌은 362개이고, 1단의 높이는 약 30㎝이다. 제13단에서 제15단에 걸쳐 남쪽으로 면한 곳에 조그마한 출입구가 나 있는데, 그 아랫부분 양쪽에 사다리를 걸었으리라고 추정되는 흔적이 있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 20단과 제25, 26단 두 곳에 정자형(井字形)으로 길고 큰 돌이 걸쳐져 있는데, 그 양쪽 끝이 바깥으로 내밀고 있으며, 꼭대기에도 정자석(井字石) 2단이 놓여 있다. 제27단 내부의 반원(半圓)에는
판석(板石)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판목(板木)을 놓았을 것으로 보여지는 자리가 있다. 꼭대기의 정자석 위에도 관측에 필요한 어떤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나 석조부분만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데, 매우 희귀한 유적(遺蹟)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첨성대의 건립에 대하여는, 《삼국유사》「선덕왕 지기삼사(善德王 知幾三事)」조(條)에 「별기운시왕대연석축첨성대(別記云是王代鍊石築瞻星臺)」라고만 나와 있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선덕왕 재위시(632~646)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참조
 
 
경주 첨성대 상단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국보 제31호. 첨성대의 상단부로서, 우물정자 모양의 돌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킨다. 석단 하나하나가 12달, 24절기를 나타낸다고 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소재하며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밑에서부터 4.16m 되는 곳의 남쪽 허리에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문이 달려 있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남쪽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다. 30cm 높이의 돌 362개로 27단을 쌓아 만들었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단에서 제20단까지와 제25단에서 제26단까지의 두 곳에 정()자형 장대석()이 걸쳐 있는데 그 양끝이 밖으로 나가 있다. 제27단 내부의 반원()에는 판석()이 있고, 맞은편에는 판목()을 놓았던 곳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다. 판석은 길이 156cm, 너비 60cm, 두께 24cm이다.

꼭대기에는 정자석()이 2단으로 짜여 있는데, 그 위에 관측기구를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혼천의()와 같은 관측기구를 정상에 설치하고 춘분 ·추분 ·동지 ·하지 등의 24절기를 별을 통하여 측정하였고, 정자석을 동서남북의 방위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첨성대가 제단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白雲仙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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