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낙안읍성 민속마을날짜: 2007.11.6
낙안읍성 성벽 너머론 가을빛이 흐른다.
단풍이 물 들어가는 가로수를 따라 들러가니 성안의 마을은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생활풍속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남자 어르신들은 양지 바른곳에 모여 추수한 벼 짚으로 겨울을 대비한 초가지붕을 새로 덮기 위해 이영을 엮고 계셨다.
초가집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어머니의 흰머리같은 존재였다.
고향으로 가는길....언덕에 올라 연기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초가 지붕을 보노라면 가슴이 울컥
뜨거워졌던 기억이 어찌 몇 사람만의 소유였을까....
텃 밭에는 목화가 익어 하얀 솜이 터져 나와 그 옛날, 유년시절의 날들을 추억으로 돌려놓는다.
목화 꽃이 피기 전 덜 여문 것을 아이들과 모여 따 먹던 생각이 스치는데 무슨 맛이나 알고 먹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목화 농사를 지어 두었다가 내 시집올 때 이불과 요까지 만들어 주셨는데...
초가집과 돌담길, 싸릿문과 굴뚝, 윤기나는 장독들, 코스모스가 늦 가을의 정겨운 합창이라도 하는듯히 한들 거려,
옛 고향에라도 온듯한 착각에 젖어드는 어머니의 아련한 모습을 품고 성곽길로 올라간다.
낙안 읍성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 주는 가옥들뿐만 아니라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들 중 15그루가 보호받고 있는 노거수로서, 낙안 읍성의 수백 년 세월을 증명하고 있다.
노거수와 초가 지붕, 기와 지붕 등이 고풍스레 어우러진 낙안 읍성은 우리 민족의
옛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본향(本鄕)과 같은 곳이다.
낙안 읍성은 현존하는 읍성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것들 중 하나이며, 조선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조선 태조 6년(1397)에 처음 쌓았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이다.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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