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기독교 자료

감람산

예인짱 2008. 2. 18. 01:11

* 감람산 *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4개의 봉우리를 가진 조그마한 언덕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약 800 m 정도인 이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감람나무(Olive Tree)가 많았기 때문에 감람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예루살렘 보다 약 90 m 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예루살렘 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예수님 당시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으나, AD 1세기 경에 숲이 다 망가져 버렸다. 유대인들은 이 산을 출발점으로 하여 일련의 봉화들을 밝혀두곤 하였는데, 바벨론으로 끌려간 동족들에게 새로운 달이 시작 되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유대인들은 죽은자들이 감람산 위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예부터 이곳 감람산은 무덤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사진 : 감람산에서는 예루살렘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쪽은 무덤지역)

예루살렘 동편의 산으로 다윗왕이 하나님께 경배 (삼하 15:30 ~ 32) 하였으며, 솔로몬의 산당 (왕상 11:7 ~ 8)이 있던 곳이다. 예수님은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기도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하였으며 부활 후 마침내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시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승천장소를 베다니 근방 (눅 24:50)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다른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이 이 감람산 꼭대기하고 한다.

예수님이 체포 당하신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이곳 감람산의 서쪽 기슭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마 21:1 ~ 10, 막 11:1 ~ 11, 눅 19:28 ~ 38, 요 12:12 ~ 19)이 시작되었고, 예수께서 성전 파괴를 예고 (막 13, 마 24, 눅 21)하신 곳이기도 하다.

막달라 마리아 교회

7개의 양파 모양의 황금빛 둥근 지붕을 하고 있는 이 전형적인 러시아풍의 교회는 러시아정교회 건축물이다. 1888년 황제 알렉산더 3세가 그의 어머니를 기념하여 건축한 교회로서 내부에는 유명한 러시아 화가들의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났을 때 망명한 사람들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백러시아 수녀들만일 신앙을 지키며 보존하고 있다.

예수 승천교회 (Chapel of the Ascension)

예수께서는 부활로부터 40일 후 승천하셨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승천에 관하여 유일하게 말하고 있는 누가에 따르면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 (눅 24:50 ~ 51)라고 보도하여, 예수의 승천이 감람산인 것을 언급하고 있으며, 동시에 누가의 저술인 사도행전에서도 승천 기사를 기록하면서 예수 승천 직후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 1:12) 고 묘사하고 있다. 안식일에는 제한된 거리 (약 1 Km) 만을 걸을 수 있는 율법 규정을 통하여 예루살렘에서부터 승천하신 곳까지의 거리를 잘 나타내 주는 표현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예수 승천이 감람산 꼭대기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져 380년 경에 승천을 상징하는 지붕없는 8각형의 교회가 세워졌으며, 십자군이 재수축하였으나, 1187년 모슬렘 교도들에 의하여 사원 형태의 돔이 씌워져 기형적인 형태를 갖춘 돔(Dome)이 서 있다. 승천시 밟아 발자국이 남겨진 바위가 사원 둥앙에 보존되어 있으나, 이에 관한 전승은 중세 이후에 만들어진 이야기로 역사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행 1:9)

주기도문 교회 (Pater Noster)

주기도문이 시작되는 라틴 말을 따서 교회 이름을 지었다. Pater Noster라는 말은 '우리 아버지'라는 뜻의 라틴 발이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곳이라고 전해 오는 곳이다.

이세상 말기에 나타나는 징조들에 관하여 설파하신 곳도 이곳이라고 전해진다. 예수님의 말씀들은 기리기 위하여 4게기에 콘스탄틴 대제가 이곳 감람산 위에 처음 기념 교회를 세웠으나 614년 페르시아 인에 의하여 파괴되고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세워진 교회 역시 후일 회교도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현재의 교회는 1875년 프랑스에서 카톨릭의 카르멜파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과 함께 건립한 것이다. 수녀원 건물 벽에는 한국어를 포함하여 세계 62개 언어로 주기도문을 번역하여 새겨 놓고 있다.

※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눅 11:1)

눈물교회 (Dominus Flevit)

감람산 꼭대기로부터 가파른 경사를 따라 예루살렘 성으로 내겨가는 기슭 중턱에 매우 독특한 작은 예배당이 있다. 교회의 네 면 귀퉁이에 눈물 모양의 돌이 있는 이 교회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예루살렘을 보며 우신 사건 (눅 19:41, 마 23:37)을 기염하여 세워진 교회로서 라틴어로는 '도미누스 플레빗' (주께서 우셨다) 이라 부르고 있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생애 가운데 우신 세번의 울음 - 나사로의 죽음을 향한 울음 (요 11:35)과 겟세마네에서의 울음 (히 5:7) - 에 비교할 때 단순히 '흐느낌' 과는 다른 '큰 소리 내어 심히 통곡하심'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를 환호하는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큰소리를 내시며 통곡'하신 예수의 눈물의 의미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그의 심정을 헤아리기에 충분한 한 단어이다.

5세기의 수도원이 이곳에 세워진 이래 1881년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의 교회는 1955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루치가 설계, 완공한 것으로서 지붕을 눈물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예루살렘 성이 한눈에 들어 온다. 이곳은 또한 예수님이 여리고로 부터 나사로가 살던 베다니 마을을 지나 벳바게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입성 하시던 길목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던 성벽의 동문(황금문)이 기드론 계곡 건너 바로 정면에 보인다.

※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눈에 숨기웠도다. (눅 19: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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