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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나’ 폐비윤씨 ‘비련의 여인 VS 희대의 악녀’ 미화 논란

예인짱 2007. 12. 5. 00:58

 

 

 

폐비윤씨는 과연 악녀였을까?

SBS 월화드라마 ‘왕과 나’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가장 의문시하는 부분은 폐비윤씨 소화가 극처럼 착하디 착했을까다. 그동안 여러 드라마와 소설 속에서 표독스럽고 악덕한 이미지로만 그려졌던 폐비윤씨였기에 이런 의문점들은 미화 논란까지 일으킬 정도다.

더욱이 폐비윤씨 소화를 연기하고 있는 구혜선에 대한 연기 논란 중심이 그녀의 연기력이 아닌 폐비윤씨 이미지에 대한 지적이 중심인 것을 감안하면(마치 오만석이 ‘댕기머리’하나로 캐스팅 논란에 휘말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폐비윤씨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단단한 지 익히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이 “폐비윤씨를 너무 미화하는 것 아니냐”고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폐비윤씨는 어떤 여자였으며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누가 폐비윤씨를 악녀라고 말했나

폐비윤씨에 대한 실체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투기심이 넘쳐 지아비이자 만인지상인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낸 악녀라는 주장부터 훈구파의 권력 다툼 속에서 ‘약자’였던 윤씨가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론까지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은 가지각색이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만으로 따지자면 폐비윤씨가 그리 좋은 왕후는 아닌 듯하다. 투기에 눈이 멀어 후궁들을 비방하고 이 때문에 성종과 싸움까지 벌이며 용상에 상처까지 냈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이는 표면에 불과하다. 역사란 1차 사료를 바탕으로 해 이를 재해석하는 연구다. 그저 기록에 있는대로 암기한다면 그것은 역사학이 아닌 오직 기록일 뿐이다.

폐비윤씨를 좋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학계의 설명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당시 조선 정치계는 훈구파 세력이 절정에 이를 때다. 사림파가 김종직을 필두로 정계에 진출하고 있었지만 훈구파를 견제할 만한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또 훈구파의 대두인 한명회와 왕실의 거두인 인수대비는 정치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예종 승하 시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밀려있던 자을산을 성종으로 만드는데 두 사람의 입김이 매우 컸다는 것은 학계의 일반적인 설명일 정도다.

더욱이 한명회와 인수대비는 성종의 첫번째 왕후인 공혜로 인해 사돈까지 맺어진 인척관계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울대로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혜왕후의 자리를 꿰찬 폐비윤씨를 한명회와 인수대비가 곱게 바라볼 리 없었을 터다. 게다가 폐비윤씨는 몰락한 가문의 여식이었고 그 아버지인 윤기견은 권력 쟁탈과는 거리가 먼 집현전에서 관직을 지내다 일찍 사망했다.

이처럼 폐비윤씨는 한명회를 등에 업은 공혜왕후나 떠오르는 정치계 샛별 윤호가 아버지이던 정현왕후와 달리 그 정치적 배경이 매우 미약했다.

훈구파가 왕실과 친인척을 맺으며 그 정치 세력을 키웠던 점을 감안하면 한명회와 인수대비에게 폐비윤씨는 달갑지 않은, 또 되찾아야하는 중전 자리를 차지한 인물일 뿐이다.

결국 폐비윤씨는 이들에 의해 폐비됐고 끝내 사사됐으니 그 운명이 매우 비련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왕실에 의해 기록되고, 왕실의 영광을 보존하는 역사서인 점을 부인할 순 없을 때 폐비윤씨에 대한 악의적 기사가 기재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것이 폐비윤씨 동정론을 앞세우는, 90년대 이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폐비윤씨에 대한 이야기다.


● 그동안 폐비윤씨 왜 악독하게 그려졌나? ‘폐비윤씨는 착하면 안돼?’

이런 복원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드라마들은 폐비윤씨를 악녀로 표현했을까? 황당하게도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꺼리’가 되기 때문이다.

정쟁과 암투가 난무하는 사극 판에서 착하고 불쌍한 폐비윤씨 캐릭터는 설 자리가 없다. 시어머니 인수대비에게 덤비고, 훌륭한 성종에게 질투나 부리는 폐비윤씨야 말로 장희빈 못지 않은 화두로 드라마에 재미를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꺼리’가 됐기 때문에 폐비윤씨가 희대의 천사로 그려진 영화도 있었다. 1천만 관객 신화를 이룬 영화 ‘왕의 남자’속에서 표현되는 폐비윤씨는 그 처량함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온갖 모함과 계책에 희생된 인물로 연산군을 자극하는 사람이 바로 폐비윤씨다.

게다가 ‘왕과 나’속 폐비윤씨 미화 논란도 대부분 폐비윤씨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아닌 그동안 보아온 소설과 드라마, 영화 속의 이미지로 잣대를 삼고 있는 웃지못할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 새로운 폐비윤씨, 즐겨라

분명 ‘왕과 나’에서 그려지는 폐비윤씨는 새롭다. 기존 사극에서 보여지던 폐비윤씨와 달리 눈물도 많고 사랑에 아파한다. 보는 이들은 새로운 해석이 가미된 폐비윤씨에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해석은 문제될 부분이 아니다. 대학교 학창 시절 글쓴이의 학우가 연산군을 옹호하는 주제로 발표를 해 그 시도만큼은 박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잘못된 역사관이나 1차 사료에 근거하지 않은 역사론이 아니라면야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역사학은 발전하고 새로운 현실에 투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해도 ‘폭군’으로 각인되던 광해군이 지금은 선진개혁군주로 재평가받는 현실에서, 제일 공정한 역사책인 교과서마저 2년 만 지나도 내용이 바뀌는 시점에서 폐비윤씨에 대해 기존의 이미지들을 들이밀 필요는 없다.

현대 역사계에서 맹위를 떨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는 거짓말이다’는 주장을 굳이 인용치 않더라도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즐길만한 가치가 있다.

폐비윤씨도 다름 아니다. 새롭게 바라보는 폐비윤씨를 즐길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못된 폐비윤씨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이제는 그녀가 말하는 안타까운 변론도 들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김형우 cox109@news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