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라고 교훈하였다.
배우는 것이 신앙이 아니고, 확신하고 거하는 것이 신앙임을 직관하신 것이다.
얼마나 많이 신앙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 모른다.
얼마나 많이 신앙을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하는지 모른다.
오늘 내 삶의 자리가 어떠한가를 생각하고 정리하고 판단하는 것에 둔감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곧 신앙의 절대주제화 시키는 모순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그 중의 하나가 감사라는 주제이다.
감사는 너무도 쉬운 주제로 생각한다.
감사는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의 삶에선,
얼마나 많이 소유적인 주제에 감사를 붙이고, 환경적인 주제에 감사를 붙이며,
보이는 것에 근거한 leving의 주제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감사는 감사의 주제로서는 성립되지만 그것이 감사의 근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의 감사는 being의 감사이다.
내 생명을 있게하신 절대자의 꿈과 소망으로부터,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핵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사랑,
그 사랑안에 영원히 거하는 자로서의 감사,
그 항상 있는 감사,
그 항상 있는 감사의 존재가 되는 것이 성경이 주시려는 감사인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자리를 정확하게 규정한다.
은혜덩어리
은혜영성의 존재임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무엇을 추구함으로 존재의 가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를 얻은 자로서 그만이 가진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가치로운 존재를 만드시는 것이다.
그것을 만드는 키워드가 바로 감사인 것이다.
이 감사의 존재로 얼마나 살아가고 있나?
내 삶의 어둠이 밀려오고, 내 삶에 한계가 부딛치고, 내 삶의 어려움이 부딛칠때 난 어떤 태도를 취하나?
얼마나 보이는 것들에 근거한 감사와 평안을 생각하나?
정말 감사의 자리에 대한 근본을 정립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추석을 맞아, 나의 감사의 자리가 더욱더 분명하게 정리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