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상담심리학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외향형, 내향형

예인짱 2007. 7. 27. 16:28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외향형, 내향형

1) 외향형

 

 외향형 사람의  일반적인 의식 태도

 

 중요한 결정이나 행동의 대부분이 주체의 의견에 의하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에 좌우될 때 이를 외향적 태도라 하고, 이런 태도가 습성화 되어 특징을 이루면 그 사람을 외향적인 사람이라 부른다. 누구나 살아가자면 외부 세계가 주는 자료들에 따라서 자기 태도를 결정하지만 외향형은 주로 객체에 자신을 맞추며, 객체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판단해 가는 경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즉 사는 법이 좋든 나쁘든 객관적인 사정이나 상황에서 오는 여러가지 요구에 직접 부합되는 것이면 그 사람은 외향적이다. 물론 외향형이라고 해서 주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관보다는 객체에서 오는 힘이 의식의 태도를 결정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외계로 향하고, 내적인 것은 외부의 요구에 의해서 억눌린다.

 

 도덕적인 행동 기준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 요구, 즉 일반적인 도덕관과 완벽히 일치한다. 일반적인 도덕관이 바뀌면 자기의 행동 기준도 바뀐다. 그 때문에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러므로는 그 사람은 내향형인 사람의 입장에선 곧잘 기회주의자, 지조 없는 사람, 뼈대가 없다. 비겁하다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삼국지의 경우를 들면 조조와 같은 인물이 해당될 것이다). 물론 외향형의 입장에서도 내향형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외향형에게 내향형은 이해할 수 없는 고집불통, 시류를 외면하는 독선가, 이기주의자 라는 비난을 듣기 쉽다(조조의 입장에서 유비를 본다고 생각해보자).

 

  보다 높은 견지에서 볼 때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반드시 어떤 경우에나 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 비정상적이면 외향형의 태도는 곧바로 환경의 비정상성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그는 사회에 함께 보편적인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행동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그 사람은 사회와 꼭같이 멸망하게 된다. 여기에 외향형의 제약이 있다고 융은 말한다.

 

 외향형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극단화될 때 자기의 주체를 소흘히 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주관적인 사실로서 외향형의 사람이 가장 소흘하게 되는 것이 신체이다. 이것은 그 자신에게 너무 외적이고 객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외향적인 태도가 너무 지나치면 신체가 고통을 받는데, 대게 외향형은 신체 감각의 이상화가 눈에 띄게 진전될 때에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외향형은 성격상 모든 것을 구체적, 객관적으로 보는 버릇이 있으므로 신체 증상도 그렇게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 외향형은 지나치게 객체에 순응하는 나머지 객체에 완전히 흡수되어 주관적인 것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이런 주관적인 것은 의식에서 배제되어 분방한 환상작용으로 무의식에 억압되어 의식을 괴롭힐 수도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주 활달하고 적극적이고 남자다운 남자가 갑자기 건강에 대하여 염려하기 시작하고 신체기관의 조그만 이상에도 놀라는 경우가 있다면, 그 사람은 외향적 태도가 너무 극단으로 치달아 이제 다른 것으로 보충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계게 이른게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융은 외향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특징적인 신경증은 히스테리성 노이로제라고 했다. 히스테리의 특징은 항상 남의 관심을 끌고 주변에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정상적인 외향성이 극도로 과장된 것이다. 또한 히스테리성 성격으 다른 특징은 극도의 환상작용인데, 이 때문에 히스테리 환자는 곧잘 거짓말쟁이라는 오해를 받거니와. 이는 의식의 외향적 태도를 보상하려는 무의식의 작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삼국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외향형 성격인 조조와 손책은 말년에는 극도의 히스테리와 환상작용에 시달렸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무의식의 태도

 

 외향저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주관적인 것을 무시하고, 객관적인 상황에 따라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건전한 외향형은 항상 적절한 보상을 내향적인 작업을 통해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장점인 객관적 현실 참여가 건설적이고 유익한 방향으로 실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외향적인 태도가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과장되면 외향적이 아닌 것은 모두 무의식에 억압되고, 이것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종국에는 무의식의 엄청난 압박이 의식에 일어나게 된다.

 

 이런 경우 그 사람의 무의식은 극단적인 내향적인 경향을 띄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에 억압된 내향적 경향은 분화 발달될 기회를 잃었으므로 억압이 오래 계속될수록 미분화되고 원시적이고 고착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내향적 경향은 무의식의 가장 본능적인 충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전한 주체적 판단이나 이에 입각한 행동력이 점차 마비되고, 유아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 성향이 차츰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의 외향적 태도가 완전하면 완전할 수록 무의식적인 태도는 유아적이고 고착적이다." 극대화된 객체지향성은 미구에는 극도의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거나 욕망에 지배당할 바탕을 마련해두고 있다. 이때 그 사람의 무의식적 경향은 단순한 어린애 같은 유치함을 넘어서는 무자비한 이기주의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근친혼적 욕망에 까지 이를 수도 있다.

 

 외향형은 현재와 바깥 현실에 집착하는 나머지 과거와 역사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옜날에 무슨 일이 있었고 누가 뭐라 했는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비난하는 사람은 대표적인 외향형이다. 미국의 프로그머티즘은 상당히 이와 같은 외향성을 띤 사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식적으로 끊어버린 과거와 역사는 의식에서는 없어질 지 몰라도, 무의식에서 계속 연명하며 그 개인을 포함한 전인류의 과거가 하나의 요청으로서 의식의 현실주의와 대립하게 된다. 이 점에서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의 전연사와 인류의 역사를 마음속에 지닌다. 역사는 한상 그 현명한 운영을

   절실히 요청한다. '지금까지의 것'은 어떻게든 '새로운 것'에서 발언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체

   험되어야 한다. 객체에의 전적인 동화는 그러므로 억압된 소수자인 '지금까지의 것'의 원초적인

   항의에 부딪치게 된다.

 

 이렇게 외향형의 의식적 태도에 상반되는 무의식적 경향이 적절한 대상의 정도를 넘어서서 의식에 대항하여 적대적인 반장용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도 깨닫지 못하는 모순된 경향이 의식 표면에 나타나 그 사람의 행동을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객관적 규준에 따라 공정무사하게 사무를 처리하며 항상 남과 사회를 위하여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때때로 자기 마음대로 무엇이든 해치우려는 아집과 횡포를 부러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경우 겉으로만 보아서는 그 사람의 어느 것이 의식적이고 어느 것이 무의식적 태도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누가 무슨 유형에 속하는지 행동으로만 보아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2) 내향형

 

 일반적인 의식 태도

 

 세계는 결코 그 자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보이는 것으로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칼 융)

 

 외향형의 사람들은 곧잘 모든 지각과 인식이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상 주관적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외향형은 객체가 그에게 요구하는 것을 주로 보지만 내향형은 객체의 인상이 주체 안에서 형성된 것에 의해서 사물을 본다. 내향적인 의식의 태도에도 외적인 조건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지만 언제나 그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그 자신의 주관이다.

 이것을 두고 자기애적, 자기중심적, 주관적, 이기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순전히 외향적인 태도에서 오는 편견이라고 융은 비판한다.

 

 현대와 같은 외향적 시대에서는 내향적 태도는 외향적 태도와 동등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다. 1920년대에도 그랬는지 융은 주관적이라는 말은 외향적 시대 풍조때문에 거의 비난처럼 들린다고 하고 있다. 그리하여 외향적인 태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무기로 '단지 주관적'이라는 말은 주로 사용되나 그 말의 의미또한 충분히 검토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주관적 요소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해 와고 어느 민족에도 있어 온 것이므로 그만큼 보편적인 요소이다. 주관적 요소 또한 하나의 세계율이다. 이 위에 발을 딛고 선 사람은 객체에 근거를 둔 사람과 똑같은 지속성과 효용성과 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주관적 태도가 객관적 태도나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태도임에는 틀림없으나, 객관적 태도가 우연성에 의하여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주관적 태도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것이기보다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내향형의 특징인 주관 중심경향을 절대시하면 글자 그대로 주관주의적,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게 되어, 외향형으로부터 단지 주관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편협한 관점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상적인 경우의 내향적 태도는 원칙적으로 전승되어 내려온 정신구조에 순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자아가 아니라 자아 이전에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해서 원형의 세계이며, 자아를 훨씬 능가하는 자기이다. 건전한 내향형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에 입각해서 행동하고 판단하는 사람이며 자아에 매달리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내향형은 자아를 자기와 혼동해서 뒤바꿀 위험을 늘상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아를 자기의 위치로 무제한 높인다. 그 사람은 자아의 판단을 극대화하고 그것의 절대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장점인 무의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향형에게도 내향적 기능이 있듯이, 내향형에게도 외향적 기능이 있다. 이 둘이 적절하게 보상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자기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내향적 태도가 극도에 다다르면 무의식에는 의식과 반대되는 외향적 경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아는 이와 같은 무의식의 제물이 되거나 전술한 것과 같이 자아의 팽창으로 인한 엄청난 권력욕에 사로잡히게 된다(항상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동오의 군주 손권이 말년에 암군이 된 이유를 상기해보자).

 

 내향형에게 객체가 왜 항상 결정적이어야 하는지 이해될 수 없는 것처럼, 외향형에게는 어째서 주관적인 입장이 객관적 입장보다 우위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외향형은 내향형이 저만 잘난 줄 아는 이기주의자나 아니면 독선적인 공상가라고 추측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외향형은 냐행형이 무의식적인 권력 콤플렉스에 영향하에 있다고 가정하기에 이를 것이다. 이런 외향형의 편견에 내향형은 어쩔 수 없이 걸려들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는 그의 단정적이고 강한 표현을 통하여 마치 그가 모든 다른 의견을 처음부터 배척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게다가 모든 객관적인 원인과 결과 위에 선험적으로 지배하는 주관적 판단에 대한 경직적인 믿음은 자기중심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도 충분하다(칼 융).

 

 무의식의 태도

 

 내향형이 자기 자신에 입각해서 사물을 판단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때 그는 이 세계와 인간 마음의 심층적인 세계를 깊이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라는 엄청난 세계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향형이 자기의 전인격인 자기 자신에게 입각하지 않고 단지 의식의 중심인 자아에만 사로잡히면, 의식의 경향은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히게 되고 객체에 대한 관심과 고려를 무시하게 된다. 그결과 모든 객체와의 관련성은 무의식에 억압된다. 의식의 태도가 자기 중심적인데 비해서 무의식의 태도는 객체 중심이 되며 객관적 규준, 외부 세계, 타인 등 모든 객체에 대한 관심이 자기도 모르게 커져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모든걸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등의, 평소의 의식적 태도와는 모순된 특징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나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남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내향형은 자아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객체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기의 성속에 숨어들려는 경향이 강하다. 진정한 의미의 은둔과는 다른 것은 그 사람은 무의식에 놓여 있는 객관 세계와의 관계를 아주 끊어버릴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객체로부터의 자극을 통제하기도 어렵고, 이것은 권력욕, 지배욕의 환상을 자극한다.

 

 극단적인 내향형 태도에 생기기 쉬운 신경즉은 신경쇠약증이다. 이런 사람들의 무의식을 살펴보면 수없는 권력환상을 볼 수 있다. 자아를 둘러싼 강대한 적들에게 공격을 당하며 도망치는 꿈들이 나타난다. 꿈속에서 때로는 이들과 대결하여 영웅적인 전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바깥세상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외계와의 접촉을 피하려 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이 경우 이들은 객관세계에 있는 것, 구체적으로 타인, 현실, 정치, 법률, 경제, 행정, 단체와 같은 것들을 실지로 있는 것보다 지나치케 크게 평가하고 두려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무의식 속에 있는 강대한 외향적 경향을 외부 세계에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향형은 그런 면에서 내향형처럼 외부 세계를 과대평가하거나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내향형은 때때로 무의식적 충동에서 자아를 방어하기 보다는 스스로 그 충동에 내맡김으로써 무의식의 외향적 경향에 지배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내향적 학자가 상아탑을 나와 사업을 시작하거나 정계에 투신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대게의 내향형은 이런 외향적 태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을 일찍 지치고 허무해진다. 그 사람은 미구에 스스로의 외향적인 사회 역활을 포기하거나 신체적 정신적 쇠약으로 그 역활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장점인 주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으면 마치 강으로 돌아간 물고기처럼 별안간 활기를 띠고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이다.

 

출처:네이버hiphoping01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