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상담심리학

그림자 - 융심리학 입문

예인짱 2007. 5. 18. 15:47

               이부영 선생님의 '그림자' (한길사)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제가 이해한대로 설명하지만 다음과 같습니다.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그림자의 통합을 인격성숙의 첫단계로 봅니다. 그림자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식에서 주로 사용하지 않아서 무의식으로 떨어져 나가서 미분화되서 원시적인 부분을 이야기 합니다.

 

의식차원에서는 성인인 듯한 성직자에 꿈(무의식) 속에 어두운 강도나 폭력적인 괴물들이 나오고 현실에서 강도의 꿈 속에서 천사나 성인이 나오기도 합니다. 강도에게는 의식에서 잘 사용하지 않은 착한 본성이 그의 그림자이겠지요.

우리의 무의식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합니다. 성자도 강도도 살인자도...

 

의식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칠 때(일방성) 무의식은 보상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인의 꿈에는 강도가 나오고 강도의 꿈에는 성인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전체인간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나에게 이런 것들이 없다. 내 마음 밖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의식(자아)의 일방성이 바로 '무명'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일방성에서 벗어날 때만 겨우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도 있고 상대방도 자신의 생각의 잣대에 맞추어 투사하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융의 그림자 문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림자 이 문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전체인간을 그 구도 위로 호출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사람에게 자신의 절망과 무능을 기억시키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이 세계에서 잘못된 것은 또한 자신 속에서도 잘못되어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되면 그는 해결되지 못한 오늘날의 엄청난 문제에 대해 최소한 극히 적은 일부분이나마 해답을 찾는데 성공할 것이다."

 

이렇게 그림자의 문제를 인식하게 될 때 아무도  세상을 함부로 심판하거나 어떤 일도 단정짓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림자는 단지 억압하거나 무시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융은 그림자를 단지 아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삶 속에서 살려내야만 비로소 통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그다지도 싫어하는 사람들의 행태대로 살아야한다 말인가? 돈과 명예를 쫓아야 한단 말인가? 라는 질문은 아직도 그림자의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질문입니다.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림자의 존재를 알고 자아가 겸허한 자세가 되는 것 자체가 자기실현을 인한 첫걸음, 하느님의 임재를 위한 자리를 내 안에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통합했을 때 비로서 그의 인격은 풍부해지고 성숙해집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은 이 그림자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적인 예를 든다면

 

누군가와 불편하여 그를 피합니다. 사실 나는 그의 어떤 모습이 싫습니다. 그러나 예의나 실제적인 인간 관계의 편의를 위해 그저 그렇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싫은 것이 사실은 나의 그림자가 그에게 투사되어서 그렇고 그 특성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느끼고 알고, 그런 모습이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그에 대한 미움이 줄어들고 내 자신에 대한 탐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특성의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그 특성의 장점을 이용하게 될 때 나의 인격의 폭은 넓어지고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시작됩니다.

 

자기 실현은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이는 상인의 길로, 어떤 이는 학자로, 어떤 이는 정치가로 자기 실현의 길을 갑니다. 어떤 이는 강도, 창녀, 살인자로서 자기 실현의 길을 가겠지요.

그러므로 어떤 이가 돈과 명예를 쫓는 것이 신의 뜻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융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전일성에 이르는 바른 길은 숙명적인 우회로와 잘못된 미로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이렇게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신이 하나의 신비이며 우리가 거기에 관해 말하는 모든 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온 말임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융이 인용한 옛날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제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구약성서인지 코란인지에 나오는 인물인데 하느님이 보낸 천사와 하루동안 지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천사가 착한 이를 벌하고 나쁜 이를 돕는 것은 참았는데 어떤 이를 이유없이 죽이자 참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했는데 천사가 떠나면서 그 이유를 하나씩 설명해주자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신을 비난한 자신을 부끄러워했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이는 돈을 통해, 명예를 통해 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을 거치겠지요.

 

저는 사실 아직 여기까지 수긍하고 믿고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하는 수준이지요.

 

저는 이제 겨우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배우고 있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융은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아니마, 아니무스의 문제가 있고 이것은 그림자의 문제에 비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릅니다.

 

아래는 자기와 자기실현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신문 기사 중 일부입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없다고 한다. 자아는 '알고 있는 정신세계', 즉 의식계의 주인이므로 '실현'이라는 말은 온당치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실현하는 것은 자아(ego)가 아니고 자기(self)가 된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이지만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은 전체정신(전체인격)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실현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융은 인간이 인격의 성숙을 위해 자기실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개인의 삶이 그것을 요구할 뿐이며, 엄숙한 것도 심각한 것도 아니고 군자나 초인이 되라는 요구도 아니라고 한다. 바로 개인의 평범한 행복을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 원장은 '전체인격'이란 그 사람이 무의식을 의식화해나감으로써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며, 끝없이 넓고 깊은 무의식을 남김없이 의식화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다만 부단히 전체인격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할 뿐이라고 한다. }

 

서울대 소아정신과 임상 강사  이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