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삶/은혜로운 간증

절대 고독 속에서 절대자를 느꼈다-이어령

예인짱 2007. 7. 26. 17:19
  • “절대 고독 속에서 절대자를 느꼈다”
  • 74세에 기독교 세례받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지상의 언어’가 헛되다는 것 50년만에 깨달아
    딸·손주의 병이 나아서 교인 된 건 아니다
    무거우면 날지 못해… 너무 많이 가져선 안돼
    • 20대의 청년 문학비평가 이어령은 저항과 분노의 실존주의자였다.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구약 성서 속 노아를 두고 그는 쏘아붙였다. “노아가 진짜 사랑이 있었다면 물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다시는 하나님을 위해 양을 잡아주지 말자.” 그랬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74)이 지난 23일 일본 도쿄에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됐다. 그는 23~24일 이틀간 도쿄와 사이타마에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열린 온누리교회 ‘러브소나타’ 선교대회에 참여했고, ‘이성에서 지성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제목의 강연도 했다. 지난 봄, 시력을 잃어가던 딸과 과잉행동장애로 고통받던 외손주가 기적적으로 치유된 것을 계기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날 도쿄에서 처음 자신의 ‘회심’을 말하면서 그는 꼭 그 이유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 ▲ 23일 도쿄 '러브소나타' 한일 리더십 포럼에서 강연중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이날 세례를 받은 뒤 1새로운 빛의 언어를 찾았다2고 말했다. /사진작가 허호씨 제공

    • ―철저한 인본주의자가 어떻게 절대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됐나.

      “딸과 손주의 치유라는 기적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 것은 아니다. 기적은 구제의 상징이지,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지상의 언어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그런 가운데 딸의 고통을 통해, 나의 해체가 왔다. 나의 지식과 힘이 딸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네가 주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면 나도 나의 무력이 증명된 것 아니냐’하고 고백했다.

      사실 나는 50년 전 이미 절대자를 찾아 외쳤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원에 분노했다. 인간의 한계와 허무를 느끼면서도 창조와 부활을 안 믿었다. 그래서 헛됨을 더욱 헛됨으로 드러내는 문학에 매달렸다. 인간이 만든 언어의 세계에서는 점 하나만 찍으면 님이 남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님이 남 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을 동반하는 일인가. 점 하나를 갖고 창조를 하려고 문학을 택했지만, 50년 만에 그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를 알게 됐다. 그러다 3년 전 홀로 공부하러 교토에 갔는데, 밤이면 텅 빈 내 방이 마치 사원처럼 느껴졌다. 절대 고독 속에 멈추어 있을 때, 평생 처음으로 바깥에서 오는 힘이라는 것은 느꼈다. 소울(soul)과 마인드(mind)는 내 안에 있는데, 스피리추얼(spiritual)한 것은 바깥에서 왔다.”

      ―그때 쓴 시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다. 그의 기도는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겠습니까”하고 끝맺는다. 새 생명을 얻은 결과로 더 좋은 글을 쓰는 것을 소망했는가.

      “구약성서 ‘욥기’에 보면 동방 전체에서 가장 부자였던 그가 자식 10명, 온 재산, 자신의 건강까지 다 잃어버린다. 절대 고통 속에서 욥은 ‘나의 말이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고 외쳤다. 카뮈가 ‘글 쓰기는 내 고통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은 거다. 욥은 작가이고 예술가다. 욥이 자신의 고통을 표현했던 자유가 구제의 증거다. 욥기를 안 읽었다면 나는 세례를 못 받았을 것이다. 지상의 언어를 버리고서 나는 깜깜한 가슴에 작은 별하나 담는 게 아니라, 저 하늘, 어둠 속에 붙박인 별들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평생을 언어의 세계에 살아온 분께서 지상의 언어를 폐기할 수 있겠는가.

      “빙산을 망치나 다이너마이트로 깨뜨리는가? 빙산을 녹이는 것은 빛의 언어다.”

      ―누구나 자기 삶이 이성과 지성, 영성의 균형 잡힌 성장을 원하지만, 과연 어디가 자신이 넘어서야 할 경계인지 알기 어렵다.

      “우스개 하나 하겠다. 아기 물고기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바다가 어떻게 생겼어요? 엄마가 대답하길 ‘글쎄, 그런 게 있다고 듣긴 했다만,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바닷속에 살면서 바다를 본 적 없는 게 우리들 인간의 삶이다. 인간을 넙치, 참치, 날치형으로 나눠보자. 넙치형 인간은 바닥에 납작 깔려 살면서 물 흐름을 타고 움직인다. 참치는 가만 있으면 가라앉는다. 하루 종일 퍼득퍼득 헤엄쳐야 산다. 그런데 날치라는 생선은 바다 바깥으로 간다. 촤ㄱ! 날아오르면서 바닷속 물고기가 바다 풍경을 본다. 수면을 박차고 오르면서 다른 세계로 나가는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가, 다른 세계로의 돌파가 우리 삶에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날치가 살려면 장이 비어 있어야 된다. 뭘 많이 먹으면 무거워서 못 난다. 한국 기독교도 날치가 되어야 한다. 너무 많이 가져선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봉사하러 간 기독교인들이 탈레반 세력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이란 점에서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도 높다.

      “기독교는 애통하는 것, 가난한 것을 ‘복 있다’라고 한다. 교회는 나눔, 사랑과 관용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 대해 독선(獨善)을 비판한다. ‘독’자 붙어서 좋은 것 하나 없다.

    출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