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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

예인짱 2007. 4. 8. 00:50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 Human Future, 강대훈정리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 송정화 옮김 / 한국경제신문


1. 들어가며

   후쿠야마는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Human Future)에서 생명공학의 세기가 막 시작하는 시점에서 생명공학이 과연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인가, 아니면 디스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생명공학이 가져올 인간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포스트휴먼’의 등장을 불길하게 내다본다. 그는 인간의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릴 미래를 내다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개념을 잡으면서 문제를 풀려고 한다. 그 다음 ‘인간 본성’을 흔들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도덕적이고 실제적’인 입장에서 엄격한 규제를 촉구한다. 책의 내용을 일차적으로는 책의 흐름에 따라 정리하면서 주요 이슈 별로 묶어 볼 것이다. 그 다음 개혁주의적 윤리관의 입장에서 재해석해 보는 식으로 책을 읽을 것이다.



2. 인간의 미래(Human Future)는?


 2.1. 신경약리학/생명공학과 인간

 생명공학은 인간의 유전자를 연구하여 새로운 모습의 인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인간의 상태를 조절하는 데 관련된 ‘신경약리학’(neuropharmacology)은 20세기 말에 ‘프로작’이나 ‘리탈린’과 같은 약물을 개발해서 이런 약품도 인간 본성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로작’이 자존감을 높이고 우울증을 치료하여 일종의 행복을 만드는 약이라면 ‘리탈린’은 반대로 사회통제의 역할을 하는 약이다.(83,91)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유전공학은 과학자들, 정치인들, 기업인들, 특정 종교집단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서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은 ‘유전’이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유전학은 ‘지능’, ‘범죄, ’성‘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지능의 60-70%는 유전적 요인이며 미국의 흑인들이 백인들의 지능보다 더 낮다고 밝힌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와 리처드 헌스타인(Richard Hernstein)처럼(51) 유전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는 (사회)과학자들 중에는 ‘인종차별주의자’와 ‘우생학자들’이 많다.(53) 이들은 ‘유전’과 범죄의 생물학적 기원에 관심을 두고 “흑인이 유전적으로 범죄자가 될 성향이 있다”(65)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전학은 인간의 성(性) 문제에서도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 분석이 2000년 6월에 완료되었지만 ‘지능’, ‘공격성’, ‘성’에 있어서 유전적 원인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정도만 밝혀졌을 뿐, 어떤 유전자와 행동이 관련되어 있는지는 매우 복잡하다는 결론만 내려진 상태다.(124)

 2.2. 신경약리학/생명공학과 미래의 인간(human future)

 ⑴ ‘소마’가 주는 즐거운 인생: 미래에는 유전공학의 발전과 상관없이도 신경약리학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멋진 신세계」에서 헉슬리가 예견한, ‘소마’(Soma)와 같은 약을 발명할 것이다.(98) 이러한 약품은 고통과 좌절 등과 연관된 인간의 정서를 변화시키므로 ‘인간 본성’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99-100)

 ⑵ 생명연장: 현대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야 가운데 하나가 ‘노인학’(gerontology)이다. 인체 세포 중 “하나는 난자와 정자에 존재하는 생식세포(germ cell)며, 다른 하나는 인체의 나머지 부분을 차지하는 수백 조의 세포를 구성하는 체세포(somatic cell)다.”(100) 줄기세포는 신체의 일부를 완전히 새로 생성시켜 노화된 부분을 대체해 줄 수 있고 줄기세포에서 복제된 부분은 면역거부 반응이 거의 없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2050년에는 미국의 평균 연령이 40세까지 올라갈 것이며, 일본은 56세, 이탈리아는 58세가 될 것이다.(105)

 ⑶ 새로운 우생학의 등장: ‘맞춤아기’(designer baby)의 제작: 유전학자들은 인간의 어떤 특징과 연관된 정보를 사용해서 더 나은 ‘맞춤아기’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유전자를 동물에게서 얻을 수도 있다.(126) 현재 시행할 수 있는 두 가지 유전공학 기술 중에서 ‘체세포 유전자치료’는 다수의 표적세포 안의 DNA를 변경하는 것이다. ‘생식세포계열의 변형 방법’은 수정란에 있는 DNA 분자 한 세트만 변경시켜, 변경된 DNA 분자가 스스로 분열을 거듭해 하나의 완전한 인간으로 분화되게 하는 것이다. 체세포 유전자치료가 체세포의 DNA만 변경하고 환자 개인에게만 영향을 마치는 반면, 생식세포계열의 변형은 환자의 자손에게 전달된다.(126-127) 부의 소유에 따라 가난한 자의 유전자, 부자의 유전자가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우생학’(‘우생학’이란 용어는 다윈의 사촌인 골턴이 처음으로 사용)이 시도될 것이다.(135) 만일 맞춤아기 기술 비용이 낮아지면, 국가 간에 차별이 생길 수 있고, 인간은 지금은 인간과 다른 ‘창조물’로 등장할 것이다.

 ⑷ 인간, 잡종생물?: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를 이용하여 ‘키메라’를 창조하려고 한다. 에모리 대학 영장류 센터 소장 제프리 본은 “인간과 유인원의 교배 실험은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어떤 연구자들은 침팬지의 배아 숙주로 인간(여성)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생명공학 회사 어드밴스트 셀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DNA를 소의 난자에 이식해 자라게 하는 데 성공한 후 이를 폐기했다고 발표했다.(309)

 2.3.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후쿠야마는 “왜 우리는 걱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특정한 유전 형질을 선택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인간의 생식을 유도하는 우생학이라는 망령이 유전학 전반에 스며들었다.”(137)고 우려한다. 이미 나치는 유태인 전체의 멸종을 시도했고, 유전적으로 열등하다고 판단한 자국민도 정리했다.(137, 좀더 자세한 내용은 이상원, “인간과 유전공학”, 54-55을 참조바람) 나치 시대와 달리 현대의 “새로운 우생학은 원칙적으로 가장 높은 유전자 수준으로 변화시키도록 허용하는 것이다.”(137) 인간은 자신의 자유와 권리로 유전자가 향상된 ‘포스트휴먼’을 만들 것이다.
 ⑴ “그러나 포스트휴먼의 세계는 현존하는 세상보다 훨씬 더 계층적이고 경쟁적이며, 그 결과 사회적 갈등으로 자득 찬 세상일 수 있다.”(325) 생명공학은 생명을 연장시키고 건강을 주는 대신 사회와 국가를 불평등하게 만들 것이다.
 ⑵ ‘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를 없애고 평등한 유전자를 만든다고 해도 그 사회는 ‘공유된 인간성’이라는 관념을 상실할 수 있다. 신경약리학의 영향으로도 이미 변화되어 가는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른 종의 유전자와도 섞을 수도 있기에,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혼돈을 겪을 것이다.
 ⑶ 생명의 연장은 오히려 디스토피아를 가져 올 수 있다. 생명이 연장되면 군사, 인적 자원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최상위 집단의 수가 너무 많아질 것이고 일할 나이에도 퇴출되는 슬픔을 겪는 등 죽지 못해 고통할 수도 있다.(110-111)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숭고한 마음을 가졌던 감정은 사라져 ‘인간됨’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2.4. 미래 인간을 만드는 생명공학에 대한 우려

 유전공학으로 포스트휴먼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에서는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인은 인간만이 도덕적 선택을 하고 자유 의지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존엄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톨릭교회와 보수주의적 기독교 그룹이 생명의학 기술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143) 그러나 후쿠야마는 “종교는 특정한 종류의 생명공학을 반대할 가장 명백한 근거를 제공하지만 종교의 기본 가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종교적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고 본다.(147)  그래서 후쿠야마는 자신의 논리를 펴는데, 우선 ‘공리주의적’ 윤리관을 비판한다. 공리주의자들은 주로 생명공학이 미래에 안겨다 줄 혜택을 경제적으로 평가한다. 이들은 종교에서 생명공학이 초래할 피해(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위협)를 경고해도 ‘부정적 외부 효과’(negative externality; 거래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에게 주는 부담)가 없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부모의 잘못된 애정과 과학자들의 야망은 제3자인 자녀에게 분명히 피해를 준다:(149) 쌍둥이 동생 데이비드는 포경수술 중에 성기가 의료사고로 타버렸다. 부모는 존스홉킨스 대학의 성의학 전문의 존 머니의 조언을 따라 아들을 성전화시키고 ‘브렌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머니 박사는 이 연구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으나, 브렌다는 남성이길 원해서 결국 다시 성전환 수술을 받아 데이비드로 돌아왔다.(153) 부모의 애정+과학자(의사)의 야망+공리주의 윤리관이 제3자에게 피해를 준 예가 된다.(160)


3. ‘인간본성’이란?

 3.1. 인간본성이란?

 후쿠야마는 포스트휴먼의 세상은 인간을 디스토피아로 이끌 수 있다는 우려를 보였다. 후쿠야마는,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명과학이 도덕적 명령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류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가치’, ‘공유된 인간성’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종교인은 ‘인간의 본질’은 신의 선물이나 은총이라고 하지만, 후쿠야마는 같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을 잃는다면서 후쿠야마는 ‘인간 본성’의 의미를 추구한다. 후쿠야마는 ‘인간 본성’이란 “인간이라는 종의 전형적인 행동과 특성의 총합으로, 환경적 요소라기보다는 유전적 요소에 기인한다.”고 말한다.(161,202) 그런데, 유전적 요소에 기인한 ‘전형적(typical) 특성’은 ‘유전적 결정주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행동은 학습되고 수정될 수 있으며, 행동의 차이는 문화적 학습이 가능하지 않은 동물에 비해 훨씬 크고 개인적 환경을 더욱 많이 반영한다. 이것은 전형성(typicality)이라는 특성이 통계적 산물로서 행위나 특성 분포의 중앙값(median)에 가까운 어떤 것을 가리킨다.”(202) 후쿠야마는 인간이란 ‘종’이 가진 가장 큰 특성을 ‘인지능력’이라고 본다. 인간의 인지체계는 ‘채워진 백지’인데,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채워진) 인지체계를 갖고 있지만, 이 인지능력은 인간이란 종이 가지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배우고 개발해 나간다.(214-216) 그는 ‘채워진’의 의미를 노암 촘스키가 말한 ‘심층구조’라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심층구조는 “생득적이며 뇌의 발달단계에서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216) 후쿠야마는 ‘채워진’ 백지 상태를 본성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에는 생득적인 (도덕)관념이 없다고 본 로크의 인간오성론에 반대한다. 그는 ‘채워진’ 본성을 갖고 태어난 인간의 ‘백지’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채워진다고 본다.  

 3.2. 태아/배아 실험이 인간 본성을 위협하는 이유

 후쿠야마는 인간 종(種)만이 가진 본질적인 인간 특질을 ‘요소X’라고 명명한다. ‘요소X’란 개별적인 특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종을 온전하게 이루면서 다른 종(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복잡하고 전체적인 유전자 특성을 가리킨다.(261) 인간이 ‘요소X’를 가졌다고 모든 분야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어린이에게는 ‘선거권’이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는 ‘운전할 권리’가 제약을 받는다. 이들이 권리를 제약받지만, 그들은 여전히 인간만이 갖는 ‘요소X’를 본성으로 갖고 있기에 그 존엄성이 훼손될 수 없는 것이다. 태어난지 하루된 유아뿐만 아니라 수정된 배아도 ‘요소X’를 갖고 있다. 성인의 특성을 갖고 있지 않지만 완전한 성인이 되는 ‘잠재성’을 갖고 있으므로 세포나 조직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볼 수는 없다.(267) 그러므로 배아복제나 실험은 성인을 조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도덕적 문제가 된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은 생명의 연장이나 건강을 얻을 수 있지만, 인간만이 갖는 풍부하고 다양한 본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인간의 복잡성은 ‘감정’과 관련되어 있고 이 감정은 고통과 질병, 죽음에 맞서 싸우면서 능력을 갖게 되는데, 신경약리학과 생명공학은 이런 본성을 개조하거나 잃게 만들 것이다.(263)


4. 후쿠야마의 대안
 
 후쿠야마는 과학과 도덕성에 대해서 과학 그 자체는 과학이 추구하는 목적을 규정할 수 없다고 본다. 과학은 질병을 치료하는 백신을 개발하지만 생화학 무기를 만들기도 한다. 반도체의 물리적 현상을 발견하지만 수소 폭탄의 원리를 발견해서 무기화하기도 한다.(278) 윤리적으로 깊이 있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과학은 언제나 야망의 세력이나 공리주의적 이익에 흔들려 왔다. 그래서 후쿠야마는 신학, 철학, 윤리학, 정치학 등이 과학에서 파생되는 기술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 목적이 좋은지 나쁜지 규정할 수 있다.”(278)고 강조한다.
 그러면 규제할 수 있는 역할을 누가 맡아야 하는가? 후쿠야마는 생명공학에 대한 문제는 정치적 문제이므로 선거로 선출된 대표자를 통해 구성되는 정치적 공동체가 기술의 속도와 범위를 규제할 권한을 갖는다고 본다.(279) 오늘날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생명공학은 ‘산업’과 직결되어 있다. 후쿠야마는 인간의 본성을 위협하는 기술을 인간의 번영을 증진시키는 기술과 구분하여, 인간 복제와 같은 전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정치적으로 기술의 개발과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국가의 규제는 국제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74) 국가와 국제 기구가 과연 생명공학의 속도와 범위를 규제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핵무기 개발 금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규범은 ‘금지와 자제’에서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한다.(289) 그는 미국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며, 생명공학 분야에서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으면서도 규제 합의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 지역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290)


5. 「Human Future」에 대한 평가와 현실에의 적용

 5.1. 긍정적인 면

 ⑴ 생명공학이 디스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 이 시대의 과학주의는 제1,2차 세계대전 등에서 보여준 인간의 한계를 잊어버리고, 생명공학이 인류에게 유토피아를 건설해 줄 것처럼 선전한다. 그러나 후쿠야마는 인간본성을 개조하고 조합하게 될 때 생기는 인간 정체성의 혼란과 사회적 문제를 자세하게 논증하여, 생명공학의 한계와 위험성을 경고한다.

 ⑵ 생명공학이 ‘우생학’의 공포를 재현할 수 있다고 경고: 새로운 우생학은 열등한 사람을 제거하는 방향이 아니라 더 높은 사람을 창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맞춤아기를 만들기 위해서 개인이 생명공학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여 우생학 ‘산업’에 뛰어들 것이다. 우생학의 피해를 자국민이 받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와 민족이 더 크게 입었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자국 안에서 정의가 이루어진다 해도 국가간에 정보와 부에 따라 불평등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여러 가지 예와 논리로써, 후쿠야마는 부모는 태어날 자식의 유전자를 지배하고, 강대국은 약소국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⑶ 생명공학과 연관된 ‘공리주의적’ 전제가 ‘인간본성’에 혼란을 줄 것이라고 예견: 후쿠야마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생명공학을 하면 ‘키메라’와 같은 정체 불명의 인간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인간은 ‘요소X’와 같은 전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고, 배아나 태아도 성인과 같은 잠재성을 가진 인간이므로, 배아복제, 줄기세포 복제 등을 경제 논리로 허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인간의 잠재성을 가져도 인간이다.(그의 견해는 생명의 기원이나 인간 본질에 대한 견해를 제외하고는 “생명윤리기본법에 관한 천주교․기독교 공동기자회견” 내용과 유사하다.)

 ⑷ 생명공학이 추구하는 목적을 신학자/과학자/역사가/생명윤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 이는 생명윤리에 관련된 세력에게 생명공학의 현실과 미래를 맡겨야 한다는 견해로서, 생명공학의 기술남용을 막을 안이다.

 ⑸ 과학기술을 막을 길이 없다는 회의주의에 도전하면서 규제를 대안으로 제시: 그는 생명공학의 문제는 결국 ‘정치적’인 문제라고 규정한다. 그는 공리주의나 과학주의의 주장 앞에서 미리 도덕적 주장을 포기하기 보다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생명공학의 흐름을 바로 잡을 노력과 의지를 가질 것을 강조한다.

 5.2. 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본 한계

 ⑴ 후쿠야마가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의 근거로 삼고 있는 ‘인간 본성’: 후쿠야마는 생명공학을 제어할 수 있는 근거를 ‘인간 존엄성’에다 두면서 ‘인간 존엄성’은 ‘인간 본성’의 정의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 그는 인간 본성은 이미 어떤 특징으로 ‘채워졌지만’ 다시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채워지는 ‘백지’라고 본다. 물론 후쿠야마가 종교는 타․비 종교인에게는 호소력이 부족하므로, ‘세속적 인간 본성’ 논리를 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후쿠야마가 오늘날 생명공학과 연관된 ‘공리주의적 윤리관’과 ‘자유주의적 윤리관’(자율적 권리 주장)을 지적한 것은 옳으나, 인간을 진화의 산물로 본다든지 진화되는 본성으로 보는 데는 문제가 있다. 후쿠야마의 ‘인간 본성’ 논리는 ‘자연법적 윤리관’과 비슷한 것 같다. 자연법 이론과 같이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현재의 이성이나 감성 등을 특징으로 갖게 되었다면 (그는 카톨릭은 진화론을 인정한 인간 본성을 주장한다고 말한다) ‘자연적인 것은 옳은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이상원, “기독교생명윤리는 무엇인가”, 9) 결국 그가 말한 ‘인간 본성’도 명확한 정의가 될 수 없으며 가변성을 인정함으로써 여전히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인간 본질’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은 명확하고 합당하다: “기독교는 인간을 유전자와 환경의 차원에 의하여 형성되기에 앞서서 영원에 의해 형성되는 존재로 본다.”(이상원, “인간과 유전공학”, 43)

 ⑵ ‘도덕적이고 실제적 이유’와 ‘창조주-피조물’의 관계에서: 후쿠야마는 아기를 만들 목적으로 행하는 생식적 복제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그것은 ‘도덕적이고 실제적 이유’때문이다.(310) 그러나 ‘실제적’ 상황은 언제나 유동적이기 때문에 그가 제안하는 치료적 목적과 형질 강화의 구분은 과연 실제적 지침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실제적’ 이유 보다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치료’와 ‘향상’의 선을 구분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창조주의 영역’ 밖에서 치료의 목적으로 체세포복제를 생각한다면, 성체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난자와 결합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세포 그 자체를 복제하는 접근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이상원, “인간과 유전공학”, 52)

 5.3. 현실적 적용

 후쿠야마가 생명공학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의 현실이나 신 우생학의 등장에 대한 경고는 기독교 신앙과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준다. 그의 견해를 적용해 보자. 생명공학에 참여하는 기업이 가진 공리주의적 윤리관은 인류에게 효용 대신 혼란을 던져 줄 수 있으므로 잘못된 윤리관이다. 과학이 추구하는 목적을 평가하는 대상은 과학자들의 몫이 아니므로, 역사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펴 볼 수 있는 것처럼, 과학주의의 태도를 버리고 생명에 대한 경외감(기독교적으로 본다면 창조주에 앞에 선 피조물로서)을 가져야 한다. 수정체부터 잠재성을 가진 인간이므로 과학자들이나 국민들이 복제와 관련된 실험을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낙태며 살인행위다. 정치인들이나 NGO 그룹은 기술과 자본의 논리를 막을 수 없다는 회의주의에 빠지기 보다 강력한 규제와 질서 잡기에 애써야 한다. 기독교인은 후쿠야마의 통찰을 일반은총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있다. 다만, 인간 본성이나 규제의 이유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초한 명확한 개념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출처:다음신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