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경 - 반야낙조(般若落照)
해발 1,732m의 지리산 제 2봉인 반야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여자의 엉덩이 같이 보인다
는 봉우리로 전남과 전북의 경계지역이기도 하다.
노고단에서 바라보면 바치 여인의 젖가슴처럼 봉긋 솟아있는 봉우리다. 노고단 정상에
서 능선을 따라 3시간 30분 가량의 산행코스인 반야봉은 사방이 절벽지대로 고산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반야봉에 오르는 기쁨은 낙조(落照)의 장관에서 찾는다.
여름날 해거름에 반야봉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서쪽 하늘의 황홀한 낙조는 아마도 자연
이 인간을 위해 베푸는 시시각각의 축제 중에서도 가장 경건하고 가장 의미심장한 축제
가 아닐까?
때로는 구름바다를 검붉게 물들이며, 때로는 마지막 정염을 불사르는 선홍의 알몸으로
서서히 스러지는 태양과 마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아득히 먼 시원(始源)의 날에 시작된
한 편의 장엄한 드라마가 끝난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4경 - 벽소명월(碧宵明月)
벽소령은 빼어난 경관과 지리산 등줄기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입지조건에서 밀림과
고사목 위에 떠오르는 달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시인 고은씨는 "어둑어둑한 숲 뒤
의 봉우리 위에 만월이 떠오르면 그 극한의 달빛이 천지에 부스러지는 찬란한 고요는
벽소령 아니면 볼 수가 없다."고 찬탄하였다.
5경 - 연하선경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과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
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
다.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
를 기화요초가 철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한다.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
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
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
6경 - 불일현폭(佛日顯瀑)
청학봉(淸鶴峰과) 백학봉(白鶴峰) 사이의 험준한 골짜기 속의 깊은 낭떠러지 폭포로 오
색무지개가 걸리고 백옥같은 물방울이 서린다.
60m 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장쾌한 폭포 소리가 온몸을 파고드는 냉기는 몸과 마음이 얼
어 붙는 긴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7경 - 피아골단풍(직전단풍,稷田丹楓)
10월 하순경에 절정을 이루는 피아골 단풍은 현란한 "색(色)의 축제"다. 사람의 손으로
는 빚어낼 수 없을 온갖 색상으로 채색한 나뭇잎들, 그들이 한데 모여 발산하는 매혹적
인 자태는 능히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산도 붉게 타고, 물도 붉
게 물들고, 그 가운데 선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명소.
피아골의 단풍은 가을 지리산의 백미다. 조선시대 유학자 조식 선생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할 정도로 단풍이 좋다. 조식 선
생은 "온 산이 붉고 물이 붉어서 사람 마음도 붉다"는 삼홍시를 읊었다고 한다.
8경 - 세석철쭉(細石)
봄이면 난만(爛漫)히 피어나는 철쭉으로 온통 꽃사태를 이루는 해발 1,600m의 세석평전
은 30리가 넘는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이다. 이름 그대로 잔돌이 많고 시원
한 샘물도 콸콸 쏟아지는 세석평전에는 수 십만 그루의 철쭉이 5월초부터 6월말까지 꽃
망울을 터뜨리며 한바탕 흐드러진 잔치가 벌어진다. 피빛처럼 선연하거나, 처녀의 속살
처럼 투명한 분홍빛의 철쭉이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지는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세석평전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시인 김석은 세석 계곡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
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라고 이곳의 철쭉을 노래하기도 했다.
지리산 철쭉은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처절하도록 서럽게, 그러나 꺾이지 않는 의지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진달래와 더불어 봄의 지리산을 단장하는 명물로, 뭇 사람들의 사
랑을 받고 있다.
9경 - 칠선계곡(七仙溪谷)
지리산 "최후의 윈시림" 지대로 자연자원의 보고이다. 계곡 전체가 청정한 선경으로 일
일이 그 이름조차 명명할수 없을만큼 아름답다.
10경 - 섬진청류(蟾津淸流)
산이 높으면 물도 맑다. 지리산을 그림자로 한 채 남서로 감돌아 남해에 이르는 섬진강
은 그 물이 맑고 푸르러 한 폭의 파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하고 앙쪽에 펼쳐진 백사장
도 하얀 명주천을 깐 듯 아름답다. 급류를 타고 오르내리며 은어떼를 낚는 어부의 모습
도 아름답기만 하다. 지리산 산자락을 그림자로 한 채 남해로 흘러드는 섬진강의 푸르
고 맑은 강물과 하연 백사장과 더불어 이 강에 뜬 돛단배는 지리산 역사와 사연들을 들
려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