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양육의세계

초대교회의 예수와 오늘의 예수

예인짱 2007. 2. 16. 10:22
 

분명 예수는 동일한 예수이신데,

초대교회의 예수와 오늘의 예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이런 질문이 나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분명 교회는 예수를 전하는 곳이고, 예수를 통해 변화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일진데,

분명 동일한 예수를 전하는데 전혀 다른 삶을 사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초대교회는 예수로 인해

그들의 존재와 내면과 삶의 형태가 바뀌었다.

그들은 정말 예수안에서 자유자가 되었고, 형제적 사랑을 가졌고, 전도의 불씨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들은 예수를 전해도 시큰둥하고, 무반응이다.

왜 그럴까? 이것이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주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수를 담는 자리이다.

 

초대교회는 예수가 살아있었고,

예수의 자리가 너무도 분명했고, 예수를 선명하게 담아갔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예수가 불분명하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갖는 의미의 자리가 불분명하고, 예수가 가진 가치의 자리가 불분명하다.

그런 이유로 예수를 소개하는 그 파워가 전혀 다르게 표현되고, 그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초대교회는 예수의 필요성 절실했고, 오늘의 교회는 예수의 필요성이 약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내가 영원히 하나님앞에 서야 하는데, 하나님앞에 과연 어떤 사람으로 설 것인가가 부담인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는 참으로 획기적인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예수가 나의 모든 것을 다 담당하실 뿐 아니라, 영원히 담당해 주신다. 이것이 예수의 본질이요, 복음의 본질임을 알게 될때, 이들이 느끼는 예수의 자리는 절대적인 자유와 평화를 주는 자리가 아닐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자리는 그 정서 자체가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 서야할 부담도 없는데,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고, 문제 투성이인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그런 자에게 예수의 자리는 좋긴 하지만 그렇게 현실적으로 풀어낼 자리이진 않은 것이다.

 

예수의 자리가 차이가 나는 또하나의 이유는,

인간에 대한 자리의 차이이다.

 

초대교회의 인간들은 자신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깊게 통감하였고, 예수님이 가지신 자리를 너무도 귀히 여기는 정서가 자리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한계를 느꼈고, 구원을 얻지 않으면 안될 절실한 구원의 필요를 갖고 있었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는 영원한 구원자요, 능력자요, 영원히 환영받을 위대한 주님이셨던 것이다.

 

그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함이 가장 큰 행복이요, 기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 존재의 자리는 그렇지 않다.

자기가 어떤 연약함을 가진 존재인지, 자기가 어떤 문제를 가진 존재인지를 깊게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에게 예수가 거하심은 좋긴 하지만 크게 어필될 주제는 아닌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초대교회의 예수와 오늘날 교회에서의 예수의 차이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흐름을 바꾸어 낼 수  비결은,

예수 자체에 대한 선명성을 더욱더 깊게 각인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예수의 존재, 예수의 역사, 예수의 힘과 능력을 계속적으로 고취시켜 가야할 책임이 교회에 있는 것이다.

 

다음으론, 하나님앞에서의 삶, 코람데오의 삶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면전에 선 것처럼 하나님의 크신 팔앞에 인간을 세우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인간을 세움이 필요한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 앞에 있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은 존재인지를 깊게 인식시킴으로서 예수의 절대적 필요성과 예수의 유용성을 더 깊게 인식해 가게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흐름들이 제대로 되어질때,

현격하게 예수의 자리가 세워지리라 믿는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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