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당시 중랑천의 모습이다.
수질이 매우 깨끗한 덕분에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했고 한강변에서 어부로 생활하는 '도시속의 어부'와 겨울철에는 한강에서 얼음을 뚫어 낚시하는 노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60년대 서울 도심의 사진
60년대로 추정되는 서울 도심의 사진이다. 사진 왼측 에 위치한 건물이 당시 남대문 국민학교이다.
지금은 학교는 사라지고 상공회의소 건물이 들어섰다.
60년대 플라스틱 장난감과 아이들
60년대에는 장난감의 품질도 좋지 못했고 비쌌다고 한다. 플라스틱 덤프트럭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주로 공터나 집 마당에서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68년 여름철 얼음 판매상의 모습
1968년 여름철의 얼음 판매상의 모습이다.
냉장고가 흔하지 않던 시절, 부모들이 가게에서 얼음을 사와 오이 냉채나 수박화채를 먹었다고 한다.
68년 청계천 팟자촌의 모습
1968년 청계천 끄트머리에 있던 판자촌의 모습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신진에이스트럭 뒤꽁무니와 오산 상가의 모습
68~69년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Neil Mishalov씨가 찍은 사진중의 하나이다.
사진 왼측 간판에 OSAN BRANCH라고 쓰여진 간판을 보아 오산지역 마을이 모습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사진 왼측 트럭의 전체 모습이 궁금하지 않나?
69년도 신문 광고에 실린 신진에이스트럭의 모습.jpg
1969년 5월 22일자 신문에 실려있는 트럭의 전체 모습이다.
이 트럭의 이름은 신진자동차공업에서 만든 신진에이스트럭이다.
신진자동차공업은 어떤 회사일까?
신진자동차공업 생산 현장
이 사진은 1965년 신진자동차공업의 국내 자동차 생산 현장이다.
신진자동차는 외환사정의 악화로 SKD(부품조립생산이) 중단된 1963년 3월 새나리자동차회사가 폐업하고 남아있던 현대식 자동차 생산공장을 김창원씨의 신진자동차공업이 사들여 만들어진 회사이다.
72년 3월 파고다 공원의 모습
1972년 3월 파고다아케이드로 둘러싸인 파고다 공원의 모습이다. 움푹 패인 지형에 정자와 조각상, 탑이 모여있는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사진 아래에 위치한 조각상은 현재는 사라졌다고 한다.
사실 이곳이 3-1운동의 시발점이었던 탑골공원이다. 하지만 1992년 이름을 원래 파고다공원에서 탑골공원으로 개정한 것이다.
1961년 11월경 눈오는 날 대학생들의 모습
1961년 11월경 눈 오는 어느 날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1965년 국수만드는 집
1965년 경기도 어느 국수집에서 국수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과는 달리 집안의 사업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1965년 달고나 장수앞의 어린이들
1965년 달고나 장수 앞에 모인 어린이들의 모습
먹는 게 변변치 못한 시절 설탕에다 소다를 넣어 만든 달고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학교 앞에는 달고나 장수가 있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달고나 뽑기'에서 틀에 완벽한 모양의 달고나를 만들면 사은품(?)을 주는 행사들도 있었다.
1966년 남대문과 상공회의소
1966년 남대문을 흥국생멸빌딩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사진 우측의 건물은 일제시대때 지어진 상공회의소 건물이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추진한 버스중앙차선제와 유사한 길 한복판에 놓인 버스정류장이 인상적이다.
1966년경 종로의 모습
1966년 서울 종로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한국에서 근무하던 한 미군병사에 의해 찍힌 사진이다.
사진 중앙에 빨간 합승버스와 나무전봇대가 이색적이다.
1968년 자판을 연 소년과 파고다 아케이드
1968년 여름 길에서 신문을 파는 소년과 그 뒤에 파고다 아케이드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한 주한미군이 찍은 사진이다.
1968년 파고다 아케이드와 낙원상가
1968년 6월 18일 종로2가 로터리에서 바라온 파고다 아케이드와 그 뒤에 공사중인 낙원상가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과는 달리 길에 중앙선도 칠해져 있지 않고 교통체계가 확립되지 못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1969년 시골 신작로를 달리는 소형버스
1969년 어느 시골의 신작로를 달리는 소형버스의 모습
신작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새로 넓게 만든 길이라는 뜻이다(출처 from 국립국어원)
무교동 네온사인
1969년 무교동 유흥가의 네온사의 모습이다. 60~70년대의 유흥가의 중심지는 명동과 무교동이었다고 한다.
금융가가 밀집했던 명동과 사무실이 밀집했던 무교동은 밤이 되면 취객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무교동에는 한때 60개여의 낙지전문점이 있던 '낙지골목'도 있었다고 한다.
물을 뜨는 여인과 두 소년
1968년 물통을 짊어지고 언덕을 올라가는 여성과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내려가는 소년의 모습
수도망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 아이들은 물을 가져가러 우물까지 갔다왔다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미술전시회 관람객들의 모습
1963년 12월 3일 어느 미술전시회의 관람객들의 모습이다.
먹고 살기 힘들던 60년대 시절 한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전시회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국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벽전이다.
벼의 품질을 검수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시골에서 벼의 상태를 살펴보는 할아버지의 모습
사근동 일대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밭을 매는 농민의 모습
60년대 사근동 일대서 밭을 매던 농민의 모습 뒤로 보이는 개울은 중랑천이다.
그 당시에는 소로 밭을 매던 농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신당동과 대신로
1968년 신당동과 사진 왼쪽에 대신로의 모습이 보인다.
주한미군이었던 Hommer Williams씨가 1968년 여름 약수동 언덕에서 내려보고 찍은 사진이다
약수동 언덕 아이들
1968년 미소짓는 두소년과 그 뒤로 주택들이 밀집한 신당동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아파트로 채워진 약수동 언덕에서 내려보고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얼어붙은 강가에서 외날썰매를 타는 소년의 모습
겨울철 얼어붙은 강가에서 외날썰매를 타고 있는 소년의 모습
연탄불 온기에 쬐는 어린이들
1961년 12월 21일 서울 어느 마을의 입구의 모습이다.
어린 아이들이 연탄재의 온기에 손을 녹이고 있다. 70년대까지는 대다수의 가정에서 연탄을 사용했고 쓰고 남은 연탄재는 눈길 미끄럼 방지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이같은 수요에 맞춰 많은 탄광들이 생겨났지만 도시가스의 공급으로 1990년대 이후 대다수의 탄광은 폐쇄되었다.
영화의 한 장면
1968년 영화 절벽에 나온 장면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하나씩 장난감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예전에는 물건을 진열장에 진열해서 팔기 보다는 저며놓고 파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973년 8월 2일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모습으로 학원은 여러학교 학생들이
모였고 시기도 방학이었기에 교복을 입은 학생도 있고 당시 사복이라고 불렀던 평상복을
입었던 학생들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 비숫한 것은 스포츠형 머리와 머리에 쓴
학생모자입니다. 당시 교련복은 교복이나 마찬가지로 편하게 입을 수 있었습니다.
학원 기둥에 기대어 있는 학생은 당시 교련복을 반팔로 접어서 교복바지를 입고
있던 당시 전형적인 학생의 모습 중 하나네요.
남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사복을 입은 양갈레로 머리를 땋은 머리의
여학생이 인상깊습니다. 이 학원은 아마도 70년대 초반경의 경복학원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70년대 초반경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자 했던 지금의 60대 분들의 학생시절 모습이
흑백의 사진 한 장 속에 잔잔히 그려져 있습니다.
1970년 6월 20일 종로구청장으로 추정되는 분이 아침부터 조기청소를 하고 계신다.
70년대 남대문 앞 청소하는 공무원들
70년대 남대문 앞 청소를 하던 인근 직장인들이나 공무원들로 추정된다.
70년대 시청앞 학생들 덕수궁 청소
70년대 시청앞의 덕수궁 길을 청소하는 인근학교 학생들의 모습이다.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공공장소의 청소를 학생들이 합동으로 청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주 있던 행사는 아니였지만 가끔식 있던 이 청소를 하기 위해 학생들은 일찍 등교해야 했다.
서울역 고가 앞 청소하는 모습
사진에서 지금은 기차역이나 아닌 박물관이나 전시관으로 사용되어지는 서울역의 모습과 공원으로 변모하는 서울역 고가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지금은 보도들럭을 색깔있는 작은 보도블럭을 사용하지만 70년대에는 격자형의 큰 보도블럭을 사용했다.
70년대 눈 내리는 명동입구의 어느날
1970년 12월 눈 내리는 명동입구의 어느날이다. 사진 속에는 오래전에 사라진 코스모스와 미도파 백화점의 모습이 보인다.
70년대 아이들이 좋아하던 마가린 밥
70년대 아이들에게 인기있던 마가린밥이다. 따뜻한 밥에 마가린을 풀어 계란이나 간장을 넣고 비벼 먹었다고 한다.
그거에 착안해 만든 기름기 있는 비벼먹은 밥이다. 특이한 것은 삼강은 아이스크림 제조 회사인데 이러한 제품을 출시했다는 점이다.
70년대 초반의 롯데껌 광고
당시 인기가수였던 김세환씨의 감미로운(?) 롯데껌 부드러운 맛이라는 가사가 있던 상업광고와 함께 색다른 3가지 맛의 껌을 출시했다.
사진 위쪽의 준수해 보이시는 저분은 1922년생 신격호 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누군지 잘 모를수도 있다.
신격호 회장의 모습.jpg
작년 롯데 탈세 6000억원대 탈세혐의때문에 검찰에 출석하셨던 신격호 회장의 모습
70년대 소녀 과자 광고
70년대에 인기있었던 롯데 새우깡과 해태 맛동산
이 당시 새우깡은 롯데그룹의 회장이었던 신격호회장의 동생 신춘호씨의 것이었는데 이것을 농심으로 사명을 변경한 것이다.
아톰지우개_1974-04
1974년경 문방구에서 팔리기 시작한 신기한(?)물건이었던 아톰지우개
로켓모양의 지우개를 다들 신기해했고 사실은 그저 로켓모양의 지우개였다고 한다. 로켓모양의 껍데기 안에는 지우개가 각 단마다 들어있었고 그것을 하나씩 쓰는 것이었다. 그 지우개의 아랫부분에는 솔이 있어 지우개똥을 치우기 위한 용도였다고 한다. 그 당시 인기있었던 아톰 만화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사서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70년대 대입 시험장의 모습
1972년 11월 27일날 대학입시예비고사장인 숙명여고 시험장을 둘러보는 문교식 문교부 장관의 모습
73년 광복절 전날의 서울 모습
1973년 8월 14일 광복전 전날의 서울의 모습이다. 사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삼익빌딩이고 그 아래쪽으로 거꾸로 S자 모양의 청계고가도로가 보인다. 현재 청계고가도로는 2003년 취임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개천 복원 사업에 의해서 폐쇄 후 철거되었다. 이후 청개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다. 지금 현재는 상징적 의미로 구교각 일부가 남아 있다.
이 사진은 중앙정보부 옥상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남대분 방향에서 바라본 서울
1973년 8월 10일 남대문 방향에서 바라본 서울
이 사진 역시 사진 위쪽 중앙의 높은 삼익 빌딩이 보이고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은 칼빌딩이다.
사진 아래 낮은 건물들이 가득한 지역은 소공동으로써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다.
70년대 젊은이들
70년대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70년대에는 여자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하였고 남자는 바바리코트와 잠바였다고 한다. 좀 더 유행을 타는 젊은이들은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60년대와 70년대 젊은 여성들
1960년대와 70년대의 젊은 여성들의 패션을 잘 나타낸 영화의 한 장면이다. 당시 여성들은 유행하던 초미니스타일의 옷을 즐겨입었다고 한다.
76년도 추석 아낙네들
1976년도 추석때 아낙네들 모습이다. 왼쪽에서 세번째와 다섯번째 여인들의 판타롱의 통 넓은 바지를 입은 모양이 치마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70년대 무단횡단
사진 아래에 나와있다시피 1975년 10월 18일 무단횡단 및 금지구역통과 등 보행위반자 단속 현장이다. 거리에 30분씩 세워두기도 하고 몇몇 짖궂은 교통경찰은 새끼줄로 가둬놓고 다른 위반자가 나타날때까지 가둬놓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1977년 차범근 결혼식
1977년 1월경 축구스타였던 차범근씨의 결혼식 사진이다. 주위의 많은 동료축구선수들의 바바리코트 복장이 인상적이다.
1975년 영화 미인의 한 장면
1975년 영화 미인의 한 장면이다. 사진의 배경은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과 그 주변이다. 1960~70년대 유행하던 산업이였던 흥신소와 전당포의 간판이 보인다.
70년대까지도 한문이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던 시절이라 간판들도 한문으로 적혀진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여대생들과는 달리 70년대 여대생들은 책가방 대신 작은 핸드백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여성들도 사회진출이 활발한 편이지만 70년대에는 대학진학은 시집을 잘 가기위한 용도일 때가 있었다고...
1972년_이태원시장
1972년경 이태원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이태원 소방서 옆길의 모습이다. 사진의 우측으로 가면 이태원 소방서와 신성일씨가 운영하던 태평극장이 있었다.
70년대 초반의 버스 안내양
70년대 초반의 버스안내양의 모습이다. 사람으로 꽉 찬 만원버스에서 손님 한 분이라도 더 태우기 위한 안내양의 모습이 애절하다.
70년대 야경
빈곤하던 60년대를 지나 산업화의 첫 발을 내딧는 70년대 서울 충모로의 야간 풍경이다.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즐비했고 여러 다방들의 모습이 보인다.
70년대 야경
70년대에는 길거리에 차들은 별로 없었지만 가로등이 환하게 빛추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과는 달리 차도만한 인도가 인상적이다.
남산에서 본 서울시가지의 모습
고층화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던 서울 도심의 모습이다. 퇴계로의 대연각빌딩, 제일 우측은 극동빌딩의 모습이 보인다. 세종로 종합청사와 광교의 옛 삼일빌딩의 고층건물에 속했다.
남산에서 본 서울시가지의 모습
현재 재건축 소숭이 벌어지고 있는 세운상가의 모습이 종로부터 퇴계로까지 길게 이어져있다. 이 당시는 낮은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현재는 빼곡히 아파트로 채워져 있다.
이제는 맛보기 힘들어진 시장가 얼음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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