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출렁다리 개통 땐 좋았죠. 주말에 어묵꼬치(3개 2000원)만 700만원어치 팔았으니까요. 지금요? 10만원어치 팔려나요?”(강원도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 근처의 한 음식점 사장)
지자체들 국내 최장, 동양 최장 경쟁
200m, 256m, 402m, 600m …
하다하다 높이로도 겨루며 1위 다툼
예산 쏟아 부으며 곳곳에 판박이 시설
개통 초기에 반짝, 탐방객 떨어져
“베끼기 일관하다 애물단지 될 것”
출렁다리 관련 안전 규정도 없어
낙뢰보호시설 등 안전장치 소홀
“5년 전에 비해 매출이 3분의 1 줄었다. 저 앞 가게는 오늘 아예 폐업을 했다.”(충남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 앞 음식점 사장 권정희(60)씨)
이들은 매출 감소 이유로 “출렁다리 탐방객이 확 줄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m, 220m, 256m, 402m, 600m ….
더 길게, 더 길게. 출렁다리 경쟁이 끝없다. 조만간 700m 짜리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다리는 먹고살자고 생겼다. 격리와 단절을 소통과 물류로 갈음했다. 때로는 험지를 피하는 방편으로 한쪽과 다른 쪽을 이었다. 영암 월출산의 구름다리, 봉화 청량산의 하늘다리, 전북 진안 구봉산의 구름다리가 그렇다. 하지만 이제 다리는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방편이 됐다. 지었거나 짓고 있는 50여 개의 전국 출렁다리는 다시 먹고살자는 문제에 맞닥뜨렸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무분별한 관광 상품 베끼기로 출렁다리가 애물단지 신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강신겸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는 “출렁다리 설치 경쟁은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지자체판 미투(me-too) 전략”이라며 “초기에는 관광객 유치라는 목적을 달성하겠지만 관광시장을 되레 쪼개면서 조만간 소멸과 공멸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근처 상인들은 이미 그 징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출렁다리의 성적표는 일단 화려하다. 지난 6일 충남 예산 예당호에 402m짜리 출렁다리가 개통됐다. 개통 보름만인 지난 21일 누적 관객 수가 30만 명이다. 예당호 출렁다리는 일본 오이타현(大分県) 현수교(370m) 기록을 훌쩍 뛰어넘으며 ‘동양 최장’을 자랑한다.
소금강 출렁다리가 있는 원주 간현 유원지는 지난해 1월 다리 개통 후 1년 새 방문객이 19만 명에서 180만 명으로 늘었다. 경남 통영의 연대-만지도 출렁다리는 2014년 설치됐는데 2013년 4만1,000명이었던 관광객이 1년 새 10만3,000명으로 늘었다. 파주시의 마장호 출렁(흔들)다리는 지난해 4월 개통 후 290만 명이 찾았고 감악산 출렁다리(2016년 9월 개통)는 누적 방문객 수 160만 명에 이르렀다. 이런 ‘출렁다리 모범·우수생’들이 계속 나타나자 다른 지자체들도 따라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예당호의 402m 기록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같은 충남의 논산시에서는 탑정호에 600m짜리를 올해 말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논산시 관계자는 “현재 교각을 세우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타이틀도 다양하다. 출렁다리는 크게 ‘호수급’과 ‘산악급’으로 나뉜다. 천장호(207m, 2009년 7월)·마장호(220m, 2018년 4월)·부항댐(256m, 2018년 11월)·예당호(402m)·탑정호(600m, 2019년 연말 예정)가 차례로 호수급 챔피언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산악급에서는 전북 진안 구봉산 출렁다리가 2015년 7월에 100m 시대를 열었다. 이후 감악산(150m, 2016년 9월)·소금산(200m, 2018년 1월)으로 챔피언이 바뀌었다. 소금산 챔프 시절도 곧 저문다. 10월에는 전남 순창 채계산에 270m짜리가 개통 예정이다. 채계산도 얼마 못 간다.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몸만들기’가 더디지만 320m에 이르는 대구 팔공산 출렁다리가 2020년 내 완공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이렇게 권좌가 지속되지 못하자 지자체들은 다른 타이틀을 만들기도 한다. 가로 길이를 세로 길이(높이)로 바꿔 챔피언을 가린다. 하여 산악급은 다시 표고 차 부문과 고도 부문으로 나뉜다. 현재 표교 차 부문 챔피언은 소금산. 바닥에서의 높이가 100m다. 고도 부문 챔피언은 해발 800m에 만들어진 봉화 청량산 하늘다리다.
산악·호수급 통합 챔피언은 이변이 없는 한 탑정호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서울이다. 이성수 성동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랜드마크로 응봉산과 서울의숲을 잇는 600~700m 출렁다리 건설을 제안했다. 하지만 성동구청 관계자는 “원래 근처에 보행교를 여러 개 만드는 것으로 검토하는 단계에서 이성수 의원이 출렁다리 설치를 제안한 것”이라며 “출렁다리 설치는 예산이 많이 들어 서울시와 협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출렁다리가 경쟁하면서 관광객을 빨아들이고 있지만 효과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지난 2~3년간 지자체 곳곳에서 출렁다리를 잇달아 만들자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 탐방객은 2014년에 107만여 명을 찍은 뒤 지난해엔 그 절반 수준인 56만8000여 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파주에 마장호 출렁다리가 들어서자 감악산 출렁다리 방문객은 1년 새 67만 여명에서 54만5000여 명으로 줄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탐방객 분산 우려에 대해 “관광객들은 마장호와 감악산 출렁다리를 모두 하루에 찾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출렁다리가 영화관 동시상영도 아니고 하루에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는 건 무리”라고 말한다. 강신겸 교수도 “관광 니즈(needs)는 수요자가 한두 번 체험하면 다시 생기기 힘들다”며 “어느 출렁다리가 새로 생겼다고 그곳에 관광객이 쏠리면 다른 곳은 공치는 날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출렁다리는 케이블카보다 비용과 환경 훼손이 적은 대신 관광객 유치에는 효과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2012년에 만들어진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는 공사비로 200억 원을 들였다.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는 2008년에 173억 원을 들여 설치됐다. 2013년에 각각 31만1000명, 137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반면 20억 원을 들인 천장호 출렁다리는 2014년에 107만 명이 찾았다. 25억 원에 만든 감악산 출렁다리에는 2017년 67만 명이 찾았다. 이렇게 ‘가성비’가 좋은 것도 너도나도 출렁다리를 만들 게 되는 원인이다. 하지만 ‘길이’ ‘높이’ 경쟁을 하면서 출렁다리 공사비는 100억 원(예당호 105억 원, 팔공산 140억 원)을 훌쩍 넘기게 됐다.
출렁다리가 곳곳에서 생기다보니 안전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출렁다리 설치와 관리에 관한 안전 규정은 별도로 없다. 지난해 10월 감사원이 발표한 ‘취약 레저시설 현장점검’ 감사 결과 전국에 있는 길이 100m 이상의 출렁다리 22개 중 절반 이상이 바람에 견디는 정도를 따지는 안정성 실험을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다리는 케이블이 구조물을 지지하는 현수교라 낙뢰에 의한 위험이 높은데도 낙뢰보호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고, 어떤 곳은 케이블 연결이 불량하거나 볼트 풀림 등이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출렁다리가 도로법상 도로가 아니라는 이유로 건설기준과 안전점검 지침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강신겸 교수는 “지금 지자체들은 다양성과 차별성을 지닌 관광정책 대신 토목 개발 위주의 과거 지향적 물적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며 “빠른 성과를 원하는 공무원들이 다른 관광 아이템에 비해 수익이 원활한 출렁다리를 급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하는 관광정책은 겉핥기 검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들이 ‘잘 되더라, 우리도 해보자’는 식으로 추진하면 성공 가도를 달리는 다른 지자체 관광시설의 매력도를 덩달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충남의 청양·부여·예산·논산 출렁다리처럼 이웃한 지자체에서 박치기하듯 경쟁하는 것을 경계했다.
전문가들은 출렁다리를 다시 찾을만한 동기가 부여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훈 교수는 “아무래도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의 관광시설은 매력도를 강하게 해야 관광객을 흡입할 수 있다”며 “그 매력도는 산·음식이나 문화 콘텐트 같은 연계상품과 연동되는 것이지 최장·최고의 물적 경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광객들도 출렁다리와 연계 관광 상품의 중요성을 꼬집는다. 대전에서 청양 천장호를 찾은 민충기씨(61)씨는 “지금 아무리 도로가 발달했지만 서울에서 청양까지 오가는 사람들은 벅차다”며 “연계 관광 상품이 있어야 지자체에서 쓴 세금을 충당할 관광객들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 화정지구에서 감악산 출렁다리를 찾은 최성규씨(61) 부부는 “그나마 감악산 출렁다리는 산과 연계 되지만 다른 곳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 예당호가 동양 최장이라지만 예산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삼송지구에서 온 A씨(52)는 “출렁다리는 저마다의 느낌이 다르다. 가지각색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는 개장 직후 한시적으로 무료 입장객을 받았다가 유료로 전환했다. 입장료 3000원을 내면 2000원짜리 상품권을 내준다. 원주시 내 가맹점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어디서 사용 가능한지 몰라 출렁다리 바로 앞 가게에서 써버린다.
소금산 출렁다리를 찾은 이영선씨(41·김천)는 “유원지 측에서는 사실상의 입장료가 1000원이라고 홍보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라며 “상품권을 어떻게 해서든 쓰고 가려고 하는데 1인당 2000원 상품권으로 뭘 사먹을 수도 없어 억지로 돈을 보태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경제 활성화 아이디어가 되레 관광객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다. 반면 서울에서 온 임동균씨(48)는 “어차피 소비를 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돈을 쓰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이 장기적 안목을 갖고 관광 정책을 짤 것을 주문한다. 강신겸 교수는 “지역 관광 정책은 사실상 공무원들이 만드는 것인데 그 구조적 부분에 접근해야 한다”며 “다양한 상품과 자원이 꾸준히 나올 수 있도록 공무원들이 얼마나 교육을 받고 전문성이 있는지, 다른 관광사업자와 기업 등 파트너들과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지 등을 따져봐야 지역 관광 상품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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