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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귀라를 아시나요?

예인짱 2018. 1. 11. 15:02
최귀라, 강승구씨를 아시나요?
영감의 찬양으로 한 세대를 풍미한 가스펠송의 주역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초 이천석목사의 한얼산 열풍이 온세상에 몰아닥칠 무렵, 이 부흥의 열기속에 더불어 활동했던 사람들이 최귀라, 강승구씨부부 이다. 이천석목사가 없었다면 이들이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한얼산 기도원에서 가끔 찬양도 했고, 최귀라씨의 가스펠송 찬양집은 당시 20집까지 낼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최귀라씨가 영감으로 부르면 찬양이 되살아나는듯 했다.
 
▲     © 황규학

 
최귀라씨는 미8군에서 노래를 했던 사람으로 패티김이 선배이고, 윤항기씨와는 같이 활동을 했다. 이후 33년 동안 가스펠 가수로 활동해오고 있다. ‘주 손길’ ‘우물가의 여인’ ‘찬양하며 살리라’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등이 최 사모의 대표곡이고 전집도 많이 냈다. 
 
남편 강승구씨는 순교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친구의 눈을 찌르른 등 못된 짓을 많이 했고,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최귀라씨를 알게 되어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찬양활동을 하고 있다. 강승구 목사는 올갠을 치고, 최귀라씨는 찬양을 한다.
 
필자는 이들이 노래하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한얼산기도원에서 만난 여학생이 자신의 교회 최귀라. 강승구씨가 간증을 한다고 초청을 해서 천호동에서 서울운동장까지 가서 289 버스를 갈아타면서 2시간 이상 걸려 신림동에 있는 제일성도교회에까지 간 적이 있었다.
 
당시(1980. 3. 1)는 사실 그 여학생을 만나러 갔는데, 최귀라씨가 부르는 노래와 강승구전도사가 전하는 메세지에 은혜를 받아 여학생과는 많은 시간도 갖지 못하고, 막차를 놓칠까봐 속히 집으로 온 기억이 있었다. 그 이후 필자는 최귀라씨의 영감의 찬양에 매료되어 그의 노래는 테입을 많이 구입해서 들은 기억이 있다. 당시 재수하면서 '내일 일은 난몰아요, 하루하루 살아요' 부르며 내일 일은 주님께 맡기고 서울대를 향하여 하루하루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20년이 지나, 필자가 2000-2004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공부하면서 목회할 무렵, 2003년 무렵 최귀라, 강승구씨가 마이애미 장로교회에 와서 찬양을 하여 만난 적이 있었다. 찬양 이후 대서양에서 함께 배를 타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강승구, 최귀라씨는 20년 전의 청초한 모습이 사라지고, 60대에 가까워 얼굴은 홍안의 모습이 바래고, 머리에는 흰머리가 있고 강승구목사는 이마는 벗겨져 중년 신사로서 나타났다. 세월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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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구씨는 당시 이천석목사님이 전두한 정권때 안기부에 끌려갔다가 심한 고문을 당한 후, 나와서 얼마있지 않아 소천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전두한이 정권이 피종진 목사, 박조준 목사, 이천석 목사등 많은 대형교회목사들을 부정축재자라고 하여 안기부에 끌어들여 고문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 고무다리를 질질 끌며 안수하는 이천석 목사     © 황규학

 
최귀라씨는 얌전하고 다소곳해 보였고, 남은 인생도 찬양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최귀라씨는 말하는 것도 차분했고, 아줌마 치고는 소녀처럼 순수해 보였다. 강승구목사는 소탈했고, 그의 솔직함은 거침이 없었다. 대서양위에서 그들과 함께 몇시간을 보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그들의 찬양과 간증이 울려퍼질 것이다. 그들은 전 세계 30여국을 다니면서 영감으로 찬양을 하고 복음을 전했다. 현재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다. 이미 작고한 이천석목사의 다하지 못한 사역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영감의 찬양을 해주기를 바란다.  
 

 

▲이천석목사 묘지     © 황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