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역사와 자연풍경
BC15년다뉴브 강 남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로마인들에 의해 정복되어 로마 제국으로 편입되었다.
790년이 지역은 프랑크 제국의 동쪽경계가 되었으며 이후 카를 대제의 신성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다.976년황제 오토 2세가 바덴부르크 가문의 한 성원에게 이 지역을 수여하다. 이 가문의 황후 270년 동안 지배하다.1278년1273년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백작이 오스트리아와 스티리아를 침략하다. 1282년 그는 오스트리아 공작의 지위가 세습될 것이라고 선언하다. 이로써 1918년까지 계속될 오스트리아에 대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가 시작되다. 다음 2세기 동안, 합스부르크 가문은 정략 결혼을 통해 영지를 넓혀나간다. 이렇게 해서 얻은 지역이 헝가리에 속해 있는 땅 외에도 부르군트, 네덜란드, 나중에는 에스파냐, 남부 이탈리아였다.1516~1556년카를 5세 치하에서 합스부르크제국은 최전성기를 맞다. 영토가 아메리카로부터 저지대 국가들에 이르렀으며, 1526년에는 보헤미아의 대부분을 지배학, 오스만 투르크에 맞선 기독교도의 투쟁의 보루가 된 것이다.1529년오스만 제국이 반을 포위하다. 그러나 함락시키는 데는 실패하다.1556년카를 5세의 양위로 광대한 합스부르크 제국은 둘로 나뉘다. 오스트리아가 독일 지역을 지배하게 되고, 나머지 지역은 합스부르크 에스파냐에 돌아간다.1648년가톨릭을 신봉하는 오스트리아, 프랑스, 에스파냐의 프로테스탄트인 독일, 영국,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네덜란드가 서로 싸웠던 30년전쟁을 종결지으며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다. 이 조약은 독일 국가들에게 주권을 인정해주면서 정치적 단위로서의 신성로마 제국과 합스부르크 가의 긴 쇠퇴의 시작을 알린다.1683년오스만이 다시 반을 포위하다. 이 나라는 얀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독일과 폴란드 다국적 군대에 의해 구제되다. 이때부터 오스트리아는 오스만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천천히 발칸 지역으로 진출한다. 1699년 헝가리를 얻다.1713년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을 종결하면서 맺은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에스파냐령 네덜란드, 이탈리아의 밀라노, 나폴리, 사르데냐, 시칠리아에 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리를 확인하다. 오스트리아는 1737년에 토스카나를 획득하고 이탈리아에 대한 지배를 확인하다.1748년1740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남성 계승자인 카를 6세가 사망한 뒤에 발발했던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엑스라샬펠 조약으로 종전되다. 이 조약은 카를 6세의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를 합스부르크 영토의 지배자로 인정한다. 그러나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에게 양도된다.1772~1797년오스트리아가 러시아, ㅍ로이센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하다. 1772년에 오스트리아는 제1차 분하레서 갈리시아를 얻다. 제3차 분할이 이루어지던 1795년 오스트리아는 크라쿠프를 포함하는 '소폴란드'를 얻다. 1797년 협약으로 폴란드가 독립을 잃다.1805년오스트리아인과 러시아인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나폴레옹에 패퇴하다.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의 많은 영토를 프랑스와 신라인연방에 합병하다. 1806년에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는 어쩔 수 없이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의 지위를 포기하고, 결국 나폴레옹에 의해 제국이 해체되다. 바그람에서 대패한 뒤, 1809~1813년에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는다. 그러나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진영을 바꾸어 나폴레옹을 공격한다. 1814~1815년 빈 회의는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 지도를 확정한다. 메테르니히 수상의 능란한 외교술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잃었던 영토 특히 북부 이탈리아 영토를 되찾고, 독일연방의 명예 수장국이 되다. 1848년합스부르크 지배령 내에서 일어난 민중혁명으로 메테르니히가 실가하고, 페르디난트 황제가 하야하다, 러시아가 헝가리 문제에 개입하면서 그의 조카인 프란츠 요제프(1848~1916)가 왕위를 승계하다.1859~1860년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지고 있던 영토 대부분을 잃는다.1866년프로이센이 독일연방을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하다. 프로이센이 7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독일 문제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하다.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 홀스타인 공작령을 잃고 이탈리아에 베네치아를 양도하다.1867년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이 프란츠 요제프에 의해 세워지다. 우선 각자 독립적인 의회를 구성하기로 하다. 그리고 두 나라가 공통의 군대와 통화를 유지하기로 하고, 관세 동맹도 맺다.1908년오스트리아가 발칸 반도에 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함으로써 국제적인 긴장을 고조시킨다.1914년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실의 휴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세르비아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촉발되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를 침공하다. 그러나 독일군의 지원을 받은 다음 해까지 군사적 원정이 성공하지 못하다.1918년제1차 세계대전이 공전되었을 때, 카를 황제의 하야와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선포되다.1919년오스트리아와 연합국 간에 체결된 생제르맹조약은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그리고 유고슬로비아라는 신생국가들에 오스트리아 영토를 양여하면서 이 나라를 모두 국가로 만들어버린다. 인슐루스, 즉 독일관의 합병이 금지되다.1933년기독사회당 출신의 총리인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의회를 해산하다.1934년돌푸스가 사회민주주의자, 공산주의자, 국가사회주의(나치) 당원들을 구금하기 시작하다. 나치는 쿠데타를 시도하고, 돌푸스를 암살하다.1938년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오스트리아의 국명이 오스트마르크로 개칭되다. 쿠르트 슈시니크 수상이 수감되다.1945년제2차 세계대전 말에, 오스트리아가 소련, 영국, 미국 그리고 프랑스 군대에 의해 점령되다. 선거를 통해 오스트리아 국민당과 사회민주당의 연립내각이 구성되다.1950년공산당의 쿠데타가 실패하다. 마셜 플랜에 따라 원조를 받으면서, 경제 회복이 원하게 진행되다.1955년오스트리아로부터 군대를 철수하고, 이 나라를 중립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오스트리아 국가조약이 조인되다.1971년브루노 크레이스키의 주도하에 사민당 정부가 출범하다. 이 사람이 향후 12년간 오스트리아 정치를 지배하다.1986년전임 국제연합 사무총장인 무르트 발트하임이 전범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선출되다. 외르크 하이디가 극후 성향의 자유당 당수가 되어, 시민당을 정부에서 축출하다. 그러나 선거에서 혼전 양상을 보이면서, 1978년에 국민당과 사민당의 '대연정'으로 회귀하다. 이 연정이 1999년가지 계속되다.1992년국민당의 토마스 클레스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다. 이 선거는 전통적인 일부 국민당 지지자들이 자유당으로 이탈했음을 확인시켜 준다.1995년오스트리아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다.1998년클레스틸이 재선되다.1999년하이더의 자유당이 케르텐 지역 투표에서 40퍼센트를 득표하고 10월 전국 선거에서 국민당과 함께 공동 2위를 하다. 사민당이 다수당으로 남다.2000년국민당이 자유당과 함께 볼프강 쉬셀을 총리로 하는 연정을 구성하다. 유럽연합이 외교적인 제재를 가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촉발시킨다.2002년오스트리아가 유로화를 채택하다.2003년국민당 사민당이 다시 연합정부를 구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