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판자촌의 변천사
서울시 삼양동, 송천동, 옥수동, 제기동 등 산허리를 따라 주렁주렁 매달린 ‘산(山)번지’들은 산꼭대기까지 정복했다. 판자촌 사람들은 낮에는 감시하는 구청 직원 몰래 집터를 봐 두었다가 밤이 어두우면 벼락치기로 네 기둥에 지붕을 얹고 사방벽을 둘러 판잣집을 뚝딱 완성했다.
"성산동 판잣집 주민들 피땀으로 푼돈 모아 대지 5천평 마련"
판자촌 주민들의 끈질긴 집념은 끝내 그들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1976년 4월 17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산천변의 판자촌을 떠나는 주민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비록 초라한 판잣집이었지만 10년을 살아온 옛집을 떠나는 아쉬움과 그토록 갈망했던 떳떳한 내 집 마련의 꿈이 실현된 감격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랐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청계천 일대의 판자촌
가난의 대명사 "판자촌"의 발자취
8.15해방은 남산 옆 산기슭에 해방촌을 형성했고, 6.25전쟁은 남인수씨의 노래 <이별의 부산 정거장>과 판자촌을 만들어냈다.
미군 담요로 아이들 외투를 만들고, 전기 켜는 사람들이 버린 필라멘트 끊긴전구는 양말을 깁는 데는 참으로 쓸모 있는 물건이었다. 비가 오면 깡통을 몇 개씩 놓고 새는 빗물을 받아야 했던 시절, 올해는 몇 사람이 이 겨울을 거리에서 헤메이다 죽으려나.. 복어알 먹고 숨진 사람들 이야기가 한해도 빠짐없이 신문에 났던 그 시절...
< 많은 피난살이 설음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6.25 전쟁으로 생겨난 부산의 판자촌은 6.25 전쟁이후 해방촌, 청계천, 창신동으로 판자촌은 그 영역을 넓혀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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