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삶/심리교실

남자 나이 50에… 사춘기?

예인짱 2011. 2. 9. 14:07

드라마 보다가 갑자기 눈물 나고 다 큰 딸한테 "사랑한다" 하고 싶고
여성 호르몬 늘어 감성적으로… 느닷없는 애정 표현, 가족은 당황
아내에게 먼저 다정하게 대하면 자녀도 천천히 마음의 문 열어

대학원생 한세인(28)씨는 최근 아버지에게서 느닷없는 고백을 받고 당황했다. "아침에 불쑥 편지를 내미시는 거예요. '우리 딸, 너는 내게 빛과 같은 존재야'란 내용이었어요. 평소 말도 없던 아빠가 그러니까 어쩔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민망해서 '왜 안 하던 행동을 하고 그래'라고 대꾸했더니, 아빠가 글쎄, 눈물을 보이는 거 있죠."

은행 지점장을 지내고 정년퇴직한 김성원(62)씨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겪은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모처럼 용기를 내서 고등학교 다니는 막내아들에게 '사랑한다'고 했더니 녀석이 도리어 짜증을 내더군요. 씁쓸했습니다."

평생을 무뚝뚝하게 회사 일만 해온 아빠들도 50~60대를 맞으면 때늦은 감정 변화를 겪는다. 감성이 예민해지고 다정다감한 성격이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50~60대 아버지의 변화를 두고 "제2의 사춘기를 겪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혼란스러운 건 아버지 혼자가 아니다. 아내도 자녀도 곤혹스럽다.

당황스러운 아빠의 사춘기

본래 사춘기란 집에서 보호받으며 자라던 청소년이 사회로 나가고 독립하고 싶어하면서 생기는 몸부림의 일종이다. 하지만 아빠들이 겪는 '제2의 사춘기'는 이와는 정반대다. 밖으로만 떠돌던 아버지가 뒤늦게 가정이란 울타리에 들어오려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음이 대부분이다.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는 "남자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에스트로겐 같은 체내 여성호르몬이 증가해 한층 감성적으로 변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남자는 평생 자신의 감정을 돌아볼 여유 없이 사는데, 퇴직 후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이 몰랐던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회계사 정한샘(33)씨는 이렇게 갑자기 변한 아버지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다. "원래 감정표현에 인색한 분인데 하루는 드라마를 보면서 펑펑 우시더라고요. 꽃을 꺾어서 제 책상에 놔두기도 하고 저한테 아침 하늘을 사진으로 찍어서 전송해 준 적도 있어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결국 답을 못했어요." 주부 이순영(52)씨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외출해 있는데 남편이 불쑥 '그냥 보고 싶어서 걸어봤다'며 전화를 했다. 반갑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고 했다.

불쑥 말하지 말고 운을 떼라

가족들은 왜 이런 아빠의 달라진 태도를 보며 당혹스러워할까. 대화전문가 이정숙 에듀테이너그룹 대표는 "무조건 자기감정부터 털어놓다 보니 벌어지는 부작용"이라고 했다. 평소 그러지 않던 사람이 느닷없이 직설적으로 속마음을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돌출 행동이라는 것.

"사랑한다"고 갑자기 말하는 것보단 "내가 좀 변한 것 같아. 전엔 안 그랬는데"라고 운을 떼는 게 더 낫다. 가족들과 마음의 문을 여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편지나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평소에 안 쓰던 어색한 말투나 거창한 시구를 늘어놓으면 역효과가 난다. 담담한 안부인사가 더 효과 있다. 편지를 건넬 땐 말 없이 내밀지 말고 "너한테 편지 하나 썼는데, 내가 나이 드니까 이런 일도 하게 되는구나"라는 식의 말을 덧붙이면 훨씬 자연스럽다.

아내에게 잘해야 자녀가 입을 연다

자녀와의 소통을 시도하기 전에 아내와 먼저 이야기를 트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생태보고서'의 저자인 김상득 듀오 기획부장은 "많은 남자가 뒤늦게 자기감정을 털어놓을 때 정작 곁에 있는 아내에겐 여전히 무뚝뚝하게 굴면서 자녀와는 무작정 대화하려고 서두르다 낭패를 본다"고 했다.

아내에게 천천히 애정표현을 시도하거나 집안일을 하나씩 도와주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는 이에 자동으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실제로 딸들은 갑자기 다가오는 아빠를 보면서 '엄마한테나 잘해주지, 갑자기 왜 나한테 이래' 하며 불만을 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씨는 "스킨십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아내와 손을 잡거나 어깨를 맞댄 모습을 가끔이라도 보여주면 자녀와 대화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 아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도 다짜고짜 "얘기 좀 하자"고 하는 것보단 함께 목욕탕을 가거나 등산·축구를 같이 하는 시간을 늘리는 게 좋은 방법이다.

출처: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08/2011020802391.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