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 우연히 만난 젊은 대위와 발레단 무희가 사랑에 빠진다.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날 대위는 전쟁터로 떠나고, 곧 전사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다. 슬픔에 빠진 무희는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몇 개월 후, 여인은 워털루 브리지역에서 내리는 군인들 속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대위와 마주친다. 더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여인은 차도 위로 몸을 던진다. 그 위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구슬픈 멜로디가 흐른다.
머빈 르로이 감독의 영화 ‘애수’(1940년)는 비비언 리의 청초함과 로버트 테일러의 중후한 남성미가 돋보였던 비극적 러브스토리. 영화의 배경처럼 2차대전이 한창이던 전시에 개봉돼 수많은 가족과 연인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 ‘올드 랭 사인’은 1759년 1월 25일 태어난 스코틀랜드의 민족시인 로버트 번스가 민요 선율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다. 1788년 발표된 이 노래의 제목은 ‘그리운 옛날’이란 뜻. 전 세계적으로 제야의 밤에 많이 불리는 노래인데, 국내에서도 1900년대 초 ‘애국가’의 곡조로 사용되기도 했고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많이 불렸다.
국내에서는 이 노래가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라는 가사로 돼 있지만, 원래 가사는 친구를 다시 만난 기쁨을 담고 있다.
“어릴 때 우리 둘은 언덕에서 뛰놀며/예쁜 데이지 꽃을 따 모았지/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지친 발로 여기저기 헤매 다녔어/내 믿음직한 친구여/자네 손을 주게나/우리 우정의 잔을 함께 드세/그리운 그 시절을 위하여.”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쓴 로버트 번스의 시는 18세기 영국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사라져 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와 설화를 조사했던 그는 친구와 함께 민요집을 펴냈다. 그의 시에는 농부의 장날 술주정 이야기, 부도덕한 목사, 악덕 지주, 시골 처녀 총각의 사랑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런 낭만의 시인을 스코틀랜드인들은 ‘로비 번스’라는 애칭으로 부르면서 잉글랜드인들이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를 기리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다. 그의 생일인 1월 25일 ‘번스 나이트’는 스코틀랜드 민속명절이 됐다. 로버트 번스의 ‘셀 커크 그레이스’를 암송하며 시작하는 이날 밤 행사는 위스키로 건배를 하고 전통 음식을 먹으며 밤늦도록 노래를 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