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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7대 불가사의

예인짱 2008. 11. 10. 09:54

한국 7대 불가사의 1 - 고인돌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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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문명사에서 천문학의 발달 여부가 중요시되고, 기원전 1200년경에 하늘을 관찰했음을 보여주는 바

빌로니아 토지 경계비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1,800년이나 앞선 천문도가 우리나라

고인돌에서 발견되었다.

고인돌에 새긴 천문도는 주로 평양의 고인돌에서 발견되는데, 그 수가 200여 기에 이른다. 고인돌 뚜껑

돌에 새긴 홈 구멍이 천문도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이 홈 구멍에 대한 견해가 분분했다.

고인돌에 새긴 홈 구멍의 배열 상태를 조사한 학자들은 널리 알려진 별자리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이 '성좌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평범한 돌에 아무렇게나 구멍을 뚫은 것처럼

 보이는 고인돌이 현대 과학자들도 놀랄 정도로 정확한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당신의 최첨단 과학 기술 정보를 돌 위에 새긴 것으로 우리 고대사를 다시 쓰게 한 획기

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한국 7대 불가사의 2 - 신라의 황금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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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보검에서 보이는 나선무늬는 통칭 그리스 소용돌이무늬라 일컫는 전형적인 그리스 로마 시대의 테
두리 무늬로 그리스의 항아리 그림 등 연속 번개무늬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동부 유럽의 켈트 지역에서 제작한 이 보검이 정작 발견된 곳은 경주의 대릉원이다. 두 지역 사이의 거리
는 약 7천 킬로미터로 오늘날의 교통수단을 경험한 현대인의 거리 감각으로는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런데 황금 보검은 수천 킬로미터를 넘어 경주의 지배자에게 전달외었다.

훈족의 서방 이동 경로에서 발견된 유물과 한국의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 등을 비교 검토한
 후 그들은 다소 설명이 빈약하기는 하지만 훈족은 원류가 아시아의 최동단,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사실은 신라와 훈족의 지배자가 충분히 연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훈족의 지배자 중
에서도 395년에 태어나 453년에 사망한 아틸라는 훈족의 왕으로서 세계 3대 제국 중 하나를 건설한 영웅
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아틸라의 근거지가 황금 보검의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트라키아 지역으로
 현재 헝가리라는 점이다.

아틸라의 비롯한 훈족의 주력 세력이 한민족과 친연 관계가 있다면 동로마제국에서 만든 황금
 보검이 신라로 전해졌다는 추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신라가 동방의 고립된 작은 나라가
아니라 당대의 어느 나라보다도 세계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7대 불가사의 3 - 다뉴세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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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충청남도 지역에서 발견된 다뉴세문경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거울로 '청동
기 시대의 불가사의'로 꼽힌다.

이 거울의 뒷면에 새긴 세문 디자인을 찬찬히 살펴보면 누구나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동심원과 선,

 삼각형, 사각형을 활용한 섬세한 디자인은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뛰어난 미적 감

각이 돋보인다.


다뉴세문경의 크기는 지름이 21.2센티미터에 불과한데,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 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이 새겨져 있다. 이 정도의 정밀함과 섬세함이라면 현대의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정밀한

제도 기구를 이용해 종이를 그린다고 해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뉴세문경은 그 아름다움과 불가사의함으로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를 매료시켰고, 이들로 하여금 그 복

원 작업에 도전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그 복원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21세기 한국 최고

의 두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원도 다뉴세문경의 복원 프로젝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원전 4세기경에 다뉴세문경을 만들어낸 우리 선조들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

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 7대 불가사의 4 - 고구려의 개마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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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중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거듭 승리를 거두고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고구려가 앞선 철기 문명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다른 나라에 비해 최첨단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주력부대는 '개마무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개마'란 기병이 타는 갑옷을 입힌 말을 이르며

개마에 탄 중무장한 기병을 '개마무사'라 했다. 오늘날 우리는 개마무사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지

만, 함경도에 있는 개마고원이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달리던 곳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 점

을 고려하면 개마무사라는 단어는 과거에 우리 민족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

다.

말조차 강철 장비로 무장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사실 기병이 아무리 용맹하더라도 말

이 부상한다면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말의 안전은 기병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고구려

는 기병은 물론 말까지 갑옷으로 무장했는데, 당시에 말과 사람을 위한 갑옷을 강철로 만드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고도로 발달한 철기 문명 수준과 아울러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고구려가 사상 최강의 전투력을 갖추고 한민족 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

를 영유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7대 불가사의 5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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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국보 126호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

판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유물은 아직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라니경은 인류의 3대 발명 중 하나인

인쇄술이 중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입증하는 유물이다.

인쇄술 덕분에 정보의 신속한 전달이 가능해졌다. 신속성의 차이 외에 정확성의 차이도 눈에 띈다. 손으

로 쓰는 글씨는 틀린거나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인쇄술을 이용해서 읽기 쉬운 글씨체로 올

바르게 여러권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

 

대량생산된 책은 저렴한 가격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정보의 신속하고 정확한 전파를 통해 인류가 축적

한 지적 자산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더 높은 창의력을 촉발했다.

706년 인쇄된 다라니경의 발견은 인쇄술이 중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기존 학설의 수정을 요구하기에 이

르렀다. 기존에 중국 당나라에서 인쇄술이 발명되었다고 추정하던 시기가 712년에서 756년 사이임을

 고려하면 다라니경의 발견이 세계의 학자들, 특히 중국 학자들에게 던진 충격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

할 수 있다.

 

 

한국 7대 불가사의 6 - 고려 수군의 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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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은 고려 말에 화약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이후 계속해서 화포를 만들고

이를 고려 수군의 전함에 정착하여 왜구를 상대로 진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대마도 정벌

에도 나섰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진포해전은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서양 역사에서 토 해전 이후 함포가 장착된 함대로 해상권을 장악한 국가가 세계를 정복하게 되며, 역사

의 주도권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간다. 서양이 동양에 대해 우위에 서게 되는 지리상의 발견과 식

민지 침탈의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함포 외교이다.

 

그런데 레판토 해전보다 무려 190년이나 앞서, 최무선은 화포를 선박에 장착하여 적선을 격파하

는 함포 해전을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

200년 후 최무선의 화약 무기와 함포 전술을 그대로 계승한 조선의 수군이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맞아 대

승을 거둔 것을 보면 당대에 최무선이 창안한 함포 전술이 얼마나 뛰어난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 7대 불가사의 7 -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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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책 한권이 발견되었다.

 

이 책에는 한글에 관한 많은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설명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이 없다면 한글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만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치가 큰 만큼 1962년 12월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책이 바로 '훈민정

음'이라는 책이다.

놀라운 것은 세계의 문자 중에서 한글처럼 창제자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한자는

 물론, 영어의 알파벳도 오랜 시간 진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으므로 창제자를 찾을 수 없다. 한글이야

말로 창제자와 창제일, 창제 동기가 뚜렷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문자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