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Q.T

마르다의 믿음(요한복음11:17-27)

예인짱 2009. 3. 13. 20:45

내용정리

 

1. 상황

 

예수님이 오셨다.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 지났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 태도

 

예수님이 오셨음을 알고,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다. (에구~단단히 삐지셨나보다~마리아가)

 

3. 대화

 

마르다-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따짐)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님-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님-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교훈

 

1. 예수님의 의도와 인간의 현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믿음, 마르다의 믿음을 믿었다.

죽은 자를 능히 살리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이제 손을 들어 나사로를 살리시옵소서~!

하고 외치길 원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딴판이었다.

 

마리아는 코빼기(죄송)도 비치지 않았다.

마르다는 이미 버스 지나갔다는 투로 한결같이 비아냥거린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만 그 믿음이 현재적이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은,

미래적이요, 이론적인 믿음을 계속 읊어 갔다.

 

예수님이 원했던 전적 믿음,

나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 전능자가 아니시옵나이까?

예수님의 뜻대로 능히 이루소서~! 우리는 순종하겠나이다. 아멘~!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미 자기 틀에 신앙을 가두어 버렸다.

그 틀대로 신앙을 믿었고, 그 틀대로 모든 말씀을 해석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만 겉도는 말씀이 되고 만 것이다.

 

신앙은 단순하다.

예수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옵소서.

이 한마디면 신앙은 끝난다.

 

이리 할줄 압니다.

저리 할줄 압니다.

이랬으면 좋았을 것을,

저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훈수두는 신앙은 참으로 분잡하고, 시끄럽고, 변덕스럽다.

 

아멘,

믿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시옵소서.

하며 전적으로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맡김이 신앙이다.

 

오직 이 신앙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이 찾으시는 그 믿음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