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은 불의한 청지기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참 아이러니칼한 사람이다.
얍삽하고, 잔꾀가 많은 사람이다.
자기의 이익에 민감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다.
그 소식을 들은 청지기는 꾀를 부린다.
먹고 살 길이 없어지니까, 빚진 자들에게 인심을 쓴다. 어짜피 내것이 아니니까.
기름 백말을 오십으로,
밀 백석을 팔십으로,
그런데 주인이 평가한다.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음으로 칭찬하였으니..
오늘의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하는 인생은 베푸는 인생이다.
이것이 오늘 나의 삶의 자리이다.
하나님은 베푸는 인생의 자리를 높게 평가하신다.
예수님이 가지신 가치관의 핵심은 이 주제로 이해해야 제대로 이해된다.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으로 표현된 사마리아사람,
집 나간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사랑,
특별히 인간을 향해 감당 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의 사랑,
이 모든 것 뒤엔 베품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시는 신앙인의 대 정서가 담겨 있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의 이익을 베풀었다.
그런데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지혜있다고 칭찬했다.
자기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돌아보는 마음을 갖는, 그런 청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교훈.
1. 베푸는 인생 점수
난 어릴 때부터 베푸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말자가 내 신조어일 정도로 주는 것을 싫어했다.
아버지가 늘 어려운 살림에 남을 돕는 것이 오히려 역 작용을 했었다.
난 베푸는 것이 적다.
그런데 내가 이기적이거나, 남을 이용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전혀 없다.
난 한 사람이 교회에 오면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한다.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난 그 사람이 교회에 유익될 어떤 시도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줄 유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난 안 주는 대신에 안 받는 것이 익숙해서인 것 같다.
난 그 사람에게 베풀어줘야 할 주제가 무엇인지를 안다.
그 주제가 바로 복음이다.
예수, 예수 사랑, 예수 마음, 예수로의 변화가 내가 그 사람에게 줄 마음이다.
그것을 주는데 익숙한 삶을 사는 나 자신을 모순되게 생각한 적은 없다.
이것이 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2. 물질을 베푸는 자
이것은 약하다.
천성적으로 약한 것 같다.
돈이 없을 때에도 남에게 물질을 준 적이 별로 없었다.
돈이 있을 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남에게 준 적이 흔치 않았다.
난 이 주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한다.
이것이 나의 흐름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흐름도 이렇다.
아니 우리 성도들도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 분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른 흐름들을 어떻게 바꾸어가야 할지가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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