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Q.T

신앙의 대 원칙, 신본주의(누가복음12:40-59)

예인짱 2008. 2. 15. 10:44

예수님이 생각하는 신앙의 자리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들어나게 된다.

예수님은 사랑의 예수님이시다.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 쪽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을 돌려대라고 말씀하신다.

강도 만난 이웃에게 사랑을 주는 자가 참된 이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기독교의 대 원칙이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전혀 다른 톤의 말씀을 하신다.

어찌보면 기독교가 마치 투쟁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말씀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무서운 말씀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투쟁적인 성격을 신앙적 용기인 것처럼 대변한다.

이것이 기독교의 양날이다.

 

분명 기독교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사랑하는 것을 익혀서 사랑의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그것이 신본주의이다.

 

사랑이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다.

신본주의가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 신본주의안에서 가장 첫번 째 가치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인본주의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본주의의 사랑은 기독교의 반대이다.

사람의 기준과 원칙에 의한 사랑을 성경은 철저히 반대한다.

 

하나님의 원칙과 반대될 때,

기독교는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를 미워하거나 다른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예 할 때, 예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하면 된다.

그것에 지나치면 악이다.

 

신본주의는 인간에게 평화를 준다.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이 인간에게 불화를 가져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다만 신본주의를 막는 인본주의, 자기가 주인되어 하나님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부딛치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원칙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모순과 문제를 분명하게 직시하고 평화하지 못할 지라도 그것을 지키는 것이 신본주의의 원칙인 것이다.

 

중요한 기준과 원칙이 담긴 말씀이다.

 

교훈.

1. 신본주의 세계관

어떤 경우에도 신본주의 세계관을 지켜야 하는 것이 신앙의 자리이다.

신본주의가 파협하고 훼손하면 신앙은 끝난다. 하나님은 다치고, 신앙은 상처를 입는다.

강력한 원칙을 갖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 원칙이 요청된다.

 

2. 사랑의 원칙

어떤 경우에도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는 자들에게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하며 기도하셨다.

사랑의 원칙은 곧장 미움의 원칙을 만든다. 그것은 매우 잘못된 원칙이다.

 

기쁨과 감사.

1. 하나님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결심과 그 결심에 근거한 삶을 살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부족함이 있지만, 내 중심, 내 기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어떤 경우에도 파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그 삶을 살기위해 애써 나가겠다.

 

2. 내가 가장 안되는 것은 판단과 사랑의 혼란이다.

아니면 미워하려는 본능을 갖는다. 나뉘면 나뉘는 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싸울려고 한다.
그게 본성이다. 나뉘는 것과 싸우는 것은 전혀 다르다.

사랑의 원칙에 근거하여 이런 말씀들을 대하게  되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사랑의 자리를 갖게 됨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