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삶/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원칙-행복자의 원칙

예인짱 2007. 10. 29. 08:19

 

 

 

오늘 말씀은 12사도를 세우시며 말씀하신 예수님의 삶에 대한 원칙이다.

이 말씀은 사도를 세우시는 원칙에 대한 말씀으로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이 이 말씀속에 담긴 깊고 깊은 뜻을 이번 말씀을 통해 발견하게 됐다. 참으로 깊은 깨달음이다.

 

하나님은 사도를 포함한 전 인간에게 요청되는 삶의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을 오늘 말씀은 잘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원칙이 자리하는 사람이 사도요,

이 원칙이 자리하는 사람이 신앙인이요, 행복자인 것이다.

행복자는 이 원칙이 삶의 내면에 자리하고 이 원칙안에서의 삶을 사는 자인 것이다.

 

이 원칙이 무엇인가?

첫째,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내가 잃어버린 자처럼 살고 있나?

얼마나 많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자처럼 살아가고 있나?

 

내 곁엔 잃어버린 자가 되어 나를 찾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을 쳐다보기는 커녕, 내 코가 석자라고 하며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편협한 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이다. 이 사람은 행복자가 될 수 없다. 나의 문제와 무관하게 잃어버린 양에게 관심을 갖는 노력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래, 내가 존재하는 것은 잃어버린 양에게 있다.

그들을 향한 배려와 사랑, 관심과 섬김이 나의 존재 이유가 되고, 나를 가치롭게 표현하는 표현이 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이런 삶이 나의 존재의 자리가 되길 소망하고 소망한다.

 

둘째,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의 삶이다.

거저 받은자로서 거저 주는 삶을 사는 것이 내 삶의 자리인 것이다.

얼마나 뺏을려고 몸부림치며 사나? 난 이런 의식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저 주는 삶은 발달되지 않았다. 목사인 내가 그러니, 다른 분들은?!!~

 

거저 주는 삶을 행복의 원칙으로 가져야 한다.

주기 위해 땀흘리고, 주기 위해 노력하고, 주기 위해 고민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주기 위해 존재함을 가슴에 담으며 주는 자로서의 삶의 자리를 가꾸고 가꾸어야 한다.

 

셋째, 가지지 말라의 삶이다.

이것은 성경의 일관된 주제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그렇다. 그게 인간이다.

이전에 집이 없을 때, 발 뻣고 누어 잘 곳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산 적이 있다.

그렇게 살다가 어둠에 익숙한 눈에 이상이 생긴것도 그 때문이다.

옷 한벌로 5년을 버티고, 차가 없는 내가 밖에 나가면 기사딸린 차가 줄을 서있다고 외치며 살았던 기억이 쟁쟁하다.

 

소유가 생명의 본질도, 행복의 본질도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난 지금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갖고 있다.

그런 난 조금도 소유에 대한 욕심이 없이 부유한 자로서의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내 속은 안 그렇다. 교회에 대한 의식, 그리고 많은 미래에 대한 의식으로 찌들린 삶을 살아가곤 한다.

 

가난하고, 초라하고, 빈곤한 삶을 청산하기 위한 마음을 갖고, 그럴 때마다 빈곤한 구조를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것이 내 존재의 초라함으로, 그것이 내 가치의 한계로 다가올 때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많은 이적을 행하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제자들과 먹을 음식이 준비되지 않아서 밀 이삭을 비벼드시던 분이시다.

전혀 가난에 개의치 않으시고, 목적을 위한 삶을 사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사도들도 마찬가지다.

초대 대 사도인 베드로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를 공식처럼 외우고 사신 분이시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소유의 넉넉함이 존재의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의식만 자리한다면 얼마나 많은 자유함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의식이 가득히 자리하도록 노력하리라.

 

넷째, 평안하기를 빌라이다.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평안을 비는 관계가 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 사람도 마음 나쁜 사람이 없이 살아가길 소망해야 한다.

 

얼마나 작은 이유로,

얼마나 평안을 만드는 노력에 빈약함을 갖는지 모른다.

사소한 견해차이로, 사소한 성격차이로 평화를 깨는 요소로 작용하는지 모른다.

 

행복자는,

이 네가지 의식이 내것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날, 난 이미 그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게 성공한 목사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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